98일 : 당근마켓
당근 마켓 거래를 하면서 이런 생각이 들었다
작년 초, 당근 마켓 앱을 깔아보았다. 동네에서 거래를 하기 때문에 이동이 편하다는 이점이 있고, 판매자에게는 필요 없는 물건일 수 있지만 그 물건이 필요한 사람에게 저렴한 가격으로 판매하기 때문에 중고 제품이라는 점만 감안한다면 의외로 좋은 제품을 합리적인 가격에 득템할 수 있다는 이점이 있다는 것이 좋았다.
거의 반년 이상은 올라오는 매물을 구경하기만 했다. 내가 주로 보았던 건 가방, 책, 원피스, 운동 기구였다. 가방을 파는 사람들은 살 때는 마음에 들어서 샀지만 몇 번 메고 다니다 보니 질리기도 하고 생각처럼 잘 이용하지 않게 되면서 팔게 되는 것 같았다. 그리고 선물 받은 명품 가방을 파는 케이스도 정말 많다. 책은 한 번 읽고 소장 가치가 떨어지면 파는 것 같은데, 중고서점에 팔아도 생각보다 돈이 안 되기 때문에 당근 마켓에서 본인이 책정한 가격으로 동네에서 쉽게 파는 것이 이득인 것이다. 원피스나 옷의 경우 명확한 이유가 동반된다. 살이 찌거나, 빠져서 옷이 맞지 않는 경우! 물론 살이 쪄서 내놓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더불어 운동 기구는 다이어트를 결심했으나 작심삼일로 끝나는 경우가 많아 매물이 쏠쏠하게 올라온다. 물론 당근으로 사는 사람들도 역시나 작심삼일로 다이어트가 끝날 때가 많아 재당근으로 운동 기구가 나오는 경우도 많이 봤다.
올해 초, 처음으로 당근마켓에서 가방을 사봤다. 중저가 브랜드의 가방인데 디자인이 특이하고 색도 예뻐서 눈여겨보게 되었다. 가격도 저렴했고, 가방 상태도 최상이었다. 이틀 정도 고민을 하고 있을 때쯤 관심을 보이는 사람의 수가 점점 늘자, 초조한 마음이 들기 시작했다. 그리고 채팅 횟수에 숫자가 올라가자 더 두었다가는 이 가방을 뺏기겠구나, 싶어서 바로 말을 걸었다. 판매자에게 가방의 상태나 구매가, 구입 시기 등을 묻고 어디서 거래를 할 수 있냐고 물었다. 판매자가 생각보다 가까운 곳에 살고 있어서 판매자의 집 근처로 가겠다고 했다. 첫 거래를 할 때, TV나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보던 것처럼 '당근?'을 외쳐야 하는 건가 싶어 살짝 떨리기도 했으나 한적한 아파트 단지 입구에서 마주한 나와 판매자는 별다른 말도 없이 '안녕하세요'라는 말과 함께 물건을 확인하고 돈을 지불하고 바로 헤어졌다. 정말 깨끗하게 잘 쓴 가방이었고, 흡족한 마음에 돌아가는 길목에서 사진을 찍어 후기를 남겼다.
두 번째 거래 역시 가방이었는데, 지역 범위를 조금 넓게 설정했더니 가지러 가기엔 꽤 먼 거리에서 사고 싶은 가방이 등장했다. 가격도 저렴하고, 상태도 좋고, 무엇보다 색깔이 너무 예뻐서 너무 사고 싶었다. 하지만 먼 거리 때문에 일주일 넘게 고민을 하다가 판매자에게 혹시 택배로 받는 것도 가능한지 아주 조심스럽게 물어보았다. 판매자는 흔쾌히 허락해 주었고, 포장도 꼼꼼하게 해서 보내주었다. 물론 당근 마켓은 기본 룰이 동네에서 대면 모드로 물건을 주고받는 것이지만, 코로나19 때문에 비대면을 원하는 경우도 늘었고 가끔씩은 택배를 이용하기도 한다. 이 가방은 요즘 최애 가방인데, 안 샀으면 땅을 치고 후회했을 것이다.
항상 보기만 하고, 사기만 하다가 무슨 바람이 불었는지 내 방에서 고이 잠들고 있는 물건들을 팔고 싶어졌다. 사진을 왕창 찍고, 제품의 정보를 확인한 뒤, 구구절절 내용을 적어 올려보았다. 금방 팔릴 것이라 예상했던 것과는 달리 깜깜무소식. 그러다가 채팅으로 문의를 하는 사람이 있길래 팔리나 보다 했는데 질문만 하고 쏙 사라진 매정한 사람...! 결국 내가 올린 화장품, 스타킹, 목욕 제품 등의 상품은 '끌올(잊혀 가는 사건이나 글, 사진 따위를 다시 언급하거나 게시하는 일)'만을 기다리며 서서히 잊혀 가고 있었다. 그러다가 어제 귀갓길에 반가운 당근 채팅방이 열렸다. 화장품을 사고 싶다는 것! 고객님(너무 고마워서 님자 붙임)은 늦은 시간까지 식당에서 일을 하셔서 직접 받기가 어려울 것 같은데, 택배로 보내줄 수 있냐고 물었다. 내가 조심스럽게 물었던 것처럼 나의 첫 고객님도 꽤나 조심스러우셨다. 나는 당연히 가능하다며 이름과 번호, 주소를 보내달라고 했다. 아직 입금이 된 건 아니지만... 드디어 팔렸다!
오늘 외출해서 사람들과 밥을 먹고 차를 마시면서 3만 원을 썼지만, 당근 마켓을 통해 벌게 될 만 원이라는 돈이 이렇게 크게 느껴질 줄은 몰랐다. 가족에게 자랑을 했더니, 정말 그렇게 거래를 할 수도 있는 거냐며 신기해했다. 나도 너무 신기하고 뿌듯했다. 마치 첫 월급을 받았던 그때의 기분이랄까? 다음에는 꼭 대면으로 직접 전달하는 고객님을 만나길 바라며, 또 방을 뒤져 팔 만한 물건이 있는지 봐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