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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몽상가 J Oct 20. 2022

왕이 되고 싶다면, '품위'를 지키시오

연애를 할 때 상대의 인품을 확인하는 방법이 몇 가지 있다. 첫째는 연인의 친구를 만나라. 친구를 보면 그 사람의 평소 수준을 어느 정도는 파악할 수 있다. 둘째는 술을 함께 마셔봐라. 술을 아예 못하는 사람이라면 불가능한 미션이지만, 취할 만큼 술을 함께 먹어보면 취객이 되었을 때 연인의 행실을 확인할 수 있다. 단, 상대도 나의 행태를 확인할 수 있다는 점을 잊지 말아야 한다. 마지막 세 번째로 음식점에서 종업원을 대하는 태도를 살펴라. 은연중에 사람을 하대하는 버릇이 있는지 확인할 수 있다.


언니가 운영하는 요리주점에서 일을 도와주다 보면 정말 다양한 인격체를 마주하게 된다. 평범한 손님이 대부분이지만, '어떻게 저런 사고를 가지고 인생을 살아갈 수 있지?'라는 생각이 들 만큼 신기한 손님들도 존재한다. 무작정 특정 서비스를 요구하는 손님도 있고, 혼자만의 공간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큰 목소리와 욕설로 통화하는 손님, 여자 사장이라는 걸 약점 삼아 협박을 섞은 농담을 던지는 손님까지. 가게에서 손님으로 마주하지 않았다면 최소 꿀밤이라도 먹였을 사람들이다. 


그중에서도 기억에 오래도록 남는 손님이 있다. 그는 등장부터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문 앞에서 한참을 서성이더니 요리하느라 바쁜 언니에게 메뉴가 뭐가 있는지, 술은 뭐가 있는지를 재차 물었다. 언니는 다른 손님들을 위해 요리를 해야 하는 상황이었지만, 그 손님도 외면할 수는 없었기에 어쩔 수 없이 메뉴판을 들고 뛰어나갔다. 한참을 둘러보던 그는 일행에게 손짓을 한 뒤 테이블에 착석했다. 아직은 더운 기운이 남아있는 시기여서 그가 앉으려는 자리보다 시원한 자리를 제안했지만, 그는 상관없다고 했다. 그러나 주문을 하고 모든 세팅이 끝날 무렵 그는 자리를 바꿔달라고 요청했다. 그래, 자리를 바꾸는 것 정도는 그럴 수 있다. 그러나 이후에도 그는 레몬의 크기를 지적하거나, 1인분으로 만들어진 요리를 1.5인분으로 만들어줄 수 있냐고 물었다. 상식이 통하지 않는 손님이라는 생각에 나가는 순간까지 조심해야겠다고 다짐했다. 그리고 대망의 퇴장 타임! 그는 현금을 내밀었다. 잔돈이 준비되어 있지 않았던 언니는 혹시 계좌이체를 해주실 수 있냐고, 아니면 일부는 현금을 주시고 나머지는 카드 결제가 가능하겠냐고 여러 가지 방안을 제시했다. 그러자 그에게 돌아온 말은 아주 가관이었다.


"10만 원만 받으시고, 3,500원은 할인해요 그럼."


살다 살다 손님이 스스로 할인하는 광경을 목격했다. 가게에 친구가 놀러와 손님처럼 술을 마시던 나는 그 꼴을 지켜보며 한마디를 거들어야 할지 가만히 있는 게 도와주는 건지 순간적으로 판단이 서지 않았다. 그는 가게 주인의 답을 듣기도 전에 셀프 디스카운트를 마친 뒤 유유히 사라졌다. 언니와 나, 그리고 나의 친구는 떠나는 그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나지막이 욕을 읊조렸다. 그리고 너털웃음과 함께 열을 식히는 용도로 한 잔을 털어 넣었다. 사실 우리는 그가 누구인지 알고 있었다. 그는 언니의 가게 근처에서 밥집을 운영하는 사장이었다. 심지어 맛집이라고 방송까지 출연했던 터라 그의 얼굴은 알고 있었다. 친구는 그 밥집에 가서 음식을 먹고 3,500원을 뺀 값을 지불하는 게 어떻겠냐고 말했다. 가장 충격을 받은 언니는 말을 아끼며 최대한 감정을 추스르고 바로 다음 손님을 응대했다.


손님은 왕이다!?


이 문장은 스위스의 호텔 경영자인 세자르 리츠(César Ritz)에 의해서 파생되었다. 사실 그가 말한 뜻은 현재 우리가 사용하는 의도와는 조금 다르다. 그는 '손님은 절대 틀리는 법이 없다'라는 말과 함께 손님이 최우선인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으로 유명했다. 그의 손님 중 실제로 왕족, 귀족, 유명인이 많았던 영향도 있겠지만, 사실상 '손님이 왕이다'라는 말은 세자르 리츠의 경영 방침과 함께 '정당한 대가를 지불한 손님이라면 왕처럼 대우받아야 한다'라는 의미이다. 무조건 손님을 왕으로 떠받들어야 한다는 의미로 사용하는 것은 왜곡된 것이다.


타인으로부터 대접받고 싶은 마음은 누구나 가질 수 있다. 특히 나이가 들수록 우리는 지나온 인생에서 자신이 들인 노력에 대한 보상과 인정을 받고 싶어 한다. 내가 이 자리에 오기까지 얼마나 노력했는지, 지금까지 이룬 성과에 대해 인정받고 그만큼 대접받기를 원한다. 그렇지만 그들이 간과하는 것이 하나 있다. 내가 이룬 업적을 통해 사회에서 보편적 대우를 받기 원해서는 안된다. 한 분야에서 눈에 띄는 성과를 보인 사람이라도 그가 쌓은 업적은 그 분야에서나 알아주는 것이지, 아무런 관련도 없는 대중까지 '당신은 정말 대단한 사람이야.'라며 추앙할 일은 없다는 것이다.


다시 돌아와서 방송 출연까지 했던 맛집 사장님은 소위 말하는 대박 난 집을 운영하고 계시다. 그분의 사업 역량과 수완은 인정할 수 있다. 그리고 맛집이라고 찾아오는 손님이 꾸준히 지속되는 걸 보니 음식 맛도 나쁘지 않은 것 같다. 그가 자신의 업장에서 성공한 사장인 건 알겠는데, 자신의 영역을 벗어난 곳에서도 그에 걸맞은 대우를 받고 싶어 스스로를 추앙하는 행태는 도저히 이해되지 않는다. 심지어 소소한 서비스 측면이 아닌, 정당하게 지불해야 하는 밥값을 스스로 할인하는 태도는 좋게 이해하려고 해도 쉽지 않다.


7살 터울의 남동생과 싸울 때마다 동생이 내게 던지는 레퍼토리 멘트가 있다.


"누나가 어른이라서 나한테 어른 대접을 받고 싶으면 어른스럽게 행동해!"

"너보다는 훨씬 어른스럽거든?"


유치한 대화지만, 동생의 멘트는 명확하다. 대접을 받고 싶으면 그에 맞게 행동하라니. 이 녀석의 말을 풀이하자면 나는 어른스럽지도 않으면서 어른 대접만 받으려는 못된 심보를 가진 나쁜 어른이다. 싸우는 순간에는 유치하게 '내가 어때서!'를 외치지만 일곱 살이나 어린 동생이 보기에 나는 권리만 주장할 줄 아는 나쁜 어른인 셈이다. 머리로는 이해하지만 행동이 엇나가는 경우, 상식이라는 걸 알면서도 비상식적인 행동을 할 때가 있다. 당연히 어른도 실수는 하지만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지 않는 어른은 대접받을 권리가 없다.


3,500원을 내지 않고 당당하게 걸어나간 손님은 가게의 문을 열고 나가는 순간 자신의 행동을 후회하거나 곱씹지 않았을 것이다. 그리고 누군가 그 행동을 지적한다 해도 잘못이라 인정하지 않을 것이다. 마지막으로 그에게 꼭 해주고 싶은 말이 있다.


손님을 왕으로 대우하는 것은 주인의 의무가 아닙니다. 왕으로 대접받고 싶다면 그에 걸맞게 품위를 지키는 것이 우선시 되어야 하지 않을까요? 당신은 왕으로 대접받을 준비가 되어있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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