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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몽상가 J Oct 19. 2022

우정 앞에 벌어지는 '격차'

'지금 당신의 첫사랑을 떠올려보세요'라는 말을 들으면 거의 모든 이는 누군가를 떠올린다. 간혹 둘 중 누가 진짜 첫사랑인지를 두고 고민하기도 하지만 아예 떠오르지 않는 경우는 드물다.


그렇다면 '지금 당신의 첫 친구를 떠올려보세요'라는 말을 들었을 때 우리는 처음으로 사귄 친구가 누구였는지 기억할 수 있을까? 대다수의 사람들은 첫 친구의 기준이 무엇인지를 두고 헷갈려 할 것이다. 말도 못 하던 어린 시절 엄마들의 친분으로 억지로 손을 잡고 사진찍던 그 아가 일지, 사회생활의 첫 시작점인 유치원에서 만난 개구쟁이 일지, 초등학교에 들어가 무리를 지어 친구를 맺던 시절의 어린이일지.


내 기억 속에 온전히 기억되는 첫 친구는 초등학교 3학년 시절에 만난 A다. 같은 학교를 다니고, 같은 아파트에 살며 하루 종일 붙어있다시피 했던 A와는 그 시절 모든 것을 다 공유하는 사이였다. 10살 이전에도 수많은 친구를 사귀었지만 어떤 이유에서인지 그 친구들의 얼굴이나 이름은 전혀 기억나지 않는다. 2년간 우정을 다진 나와 A는 아빠의 전근과 나의 전학으로 멀어지게 되었지만, 우리는 전화와 편지라는 매개체를 이용해 우정을 이어갔다. 그러나 전형적인 E의 성향을 지닌 나는 A와의 연락을 꾸준히 이어가면서도 새로 사귄 친구들과 어울리는데 진심을 다했다. 그렇게 해마다 새로운 친구를 사귀면서 A에 대한 기억은 사그라들었다. 그리고 10년 후, 20대 중반의 나이에 접어들었을 때 A가 결혼을 한다고 연락을 했다. 아직 결혼한 친구가 없던 어린 나이였기에 나는 꽤 충격을 받았다. 그때 가장 먼저 떠오른 단어는 '격차'였다.


대다수의 사람들은 열아홉 살까지 같은 프레임 안에서 살아간다. 본격적으로 프레임의 변화가 오는 시기는 스무 살. 스무 살을 맞이하는 순간 우리는 각자의 인생을 어떻게 그려나갈지 고민하게 된다. 대학교를 가는 사람은 몇 년의 유예기간을 맞이하게 되지만, 바로 사회에 뛰어드는 경우 우산도 없 갑자기 내리는 폭우에 흠뻑 젖 된다.


스무 살이 되었을 때 대학교를 가는 사람과 사회생활을 시작하는 사람에게는 보이지 않는 격차가 벌어진다. 쉬는 시간이면 계단에 앉아 생라면을 같이 부셔먹고, 하굣길을 함께 걷기 위해 서로의 종례시간을 기다려주고, 좋아하는 연예인을 함께 보러 가겠다고 설레던 마음은 잠시 제쳐두고 자신이 올라선 길 위에서 힘껏 달리기를 해야 한다. 물론 서로가 사는 삶의 방식이 달라졌다고 우정이 깨지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각자의 인생을 사느라 서로를 기억하고 마주할 시간이 줄어드는 것은 사실이다.


20대를 지나고 30대를 거쳐오면서 만만치 않은 인생을 산다는 것은 어쩌면 버티는 것에 가깝다는 생각이 든다. 힘겹게 버티는 삶을 살아내면서도 내가 절대 놓지 않았던 건 친구들과의 관계였다. 그리고 나이가 들수록 느끼는 건 우정이라는 것이 유지되기 위해서는 소수의 절대적인 노력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사람 관계에 진심인 나는 그 역할을 자처했다. 버티는 순간들을 이겨낸 후에는 그동안 연락이 뜸했던 친구에게 연락을 취했다. 바로 만나기는 어려워도 짧게나마 안부를 물었다. 서로 어떻게 지내는지 확인하고, 힘든 일은 없는지, 그러다가 시간적 여유가 생기면 과거의 추억을 끄집어내어 이야기를 이어갔다.


하지만 30대를 한 해 한 해 보낼수록 '우정'이라는 단어로 설명할 수 있던 관계가 복잡해지기 시작했고, 그것은 결국 서로의 인생에서 파생되는 '격차'때문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 결혼과 자녀

- 직업과 월급

- 건강 문제

- 가족 간의 불화


여자의 경우 결혼과 출산이 친구 관계에서 엄청난 격차를 불러온다. 결혼을 한 친구, 아이를 낳은 친구는 미혼인 친구와 서로 공감대를 발견하지 못해 관계가 소원해지는 걸 자주 목격했다. SNS에 올리는 게시물의 내용이 달라지고, 만나서 나누는 대화에서 서로 공감대를 찾지 못하면 다음 만남을 기약하기가 부담스러워진다.


사회에서 만난 친구 B는 30대 초반에 결혼을 했고, 곧바로 아이를 가졌다. B는 입버릇처럼 "너 애 키워봤어? 육아 전쟁에 휩쓸리는 나보다는 낫네. 일할 때가 좋은 거다."라는 말을 했다. 처음에는 그 말을 흘려들었다. 어쩌다 한 번은 내뱉을 수 있는 말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 말은 그녀의 유행어가 되었다. 아직 싱글이고, 아이를 낳지 않아 경력이 단절되지 않은 내가 결혼과 육아에 매여있는 자신보다 훨씬 행복할 것이라는 밑도 끝도 없는 전제를 바탕으로 내뱉는 말. 내가 어떤 고민을 안고 있고, 일을 하면서 얼마나 많은 스트레스를 받고 있는지 '잘 알지도 못하면서!'. 결국 B는 친하게 지내던 무리에서 조금씩 멀어졌다. 어쩌면 그녀가 대수롭지 않게 뱉은 그 말들이 우리 모두를 밀어낸 건 아닐까.


무엇보다 가장 안타까운 것은 '경제적 여유의 격차'이다. 30대 초반까지는 크게 벌어지지 않던 격차가 30대 후반이 되자 이미 앞서간 친구를 따라갈 수 없을 정도로 크게 벌어졌다. 경제적인 상황의 차이는 단순히 그 친구가 돈을 많이 벌어서 부럽다는 생각에서 그치지 않는다. 서로가 먹는 음식이 다르고, 즐겨하는 취미생활이 다르고, 특별한 날을 보내는 방식의 차이를 불러온다. 경제적 여유의 격차는 곧 스스로 매기는 급, 수준이 된다. 어느 순간 자신의 수준과 맞는 친구를 더 자주 만나게 되고, 격차가 벌어졌다고 느끼는 그룹의 경우 누군가는 열등감 때문에 또 누군가는 불편함 때문에 서로를 멀리하게 된다.


그래서인지 사회에 나와 같은 일을 하는 사람들과 더 자주 만나고, 그중에서 나와 마음이 맞는 사람과 친분을 유지하는 경우가 많다. 비슷한 환경에서 일을 하고, 비슷한 월급을 받으며, 비슷한 고민을 안고 있는 사람들. 어릴 적 친구가 진짜 친구고, 사회에서 만난 사람에게 마음 주지 말라는 말을 많이 듣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자연스럽게 스며드는 관계에 집착하게 되는 건 사실이다.


결국 유유상종이라는 말처럼 비슷한 상황의 사람끼리 모이게 되는 것이다. A와 내가 다시 연락이 닿았음에도 우리의 관계가 열 살 때로 돌아가지 못한 것은 보이지 않는 격차가 벌어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미 다 큰 아이를 기르며 가정생활에 충실한 A와 결혼 문턱에 오르지도 못하고 일에 빠져 허우적대는 나의 삶 가운데는 얼마나 넓고 깊은 강이 놓여 있는 걸까. 나는 여전히 A와의 우정을 소중히 여기고 있지만, 30대에게 우정이란 단순히 호감으로만 유지되기는 어렵다.


그럼에도 나는 그동안 연락이 뜸했던 친구에게 문자를 보낸다. 이미 벌어진 격차는 무시한 채 우리의 우정을 그리워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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