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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몽상가 J Oct 19. 2022

회피형 인간의 '그럴 수 있지'

불의를 보면 참지 못하는 여자가 있다. 그녀의 역사는 어릴 부터 시작됐다.


[10대]

기차를 타고 수학여행을 가는 날. 친구들과의 여행에 들떠있던 아이는 한 개의 기차 칸을 두 반이 함께 써야 한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고, 좌석이 모자라면 바닥에 앉아서 도란도란 가면 된다는 담임 선생님의 말에 부당함을 호소했다.


"수학여행비를 동일하게 냈는데 누구는 자리에 앉고, 누구는 바닥에 앉아서 가야 하나요?"


선생님은 오히려 아이에게 핀잔을 주며 조용히 하고 자리에 앉으라고 했다. 그러나 그녀가 앉을 자리라는 것은 차가운 바닥이었고, 친구들의 토닥임에 겨우 흥분은 가라앉혔지만 한번 달아오른 얼굴은 쉽게 식지 않았다.


[20대]

그녀는 방송작가 일을 하면서 '말 같지도 않은' 상황 참 많이도 겪었다. 출근길에도, 회의 중에도, 녹화 중에도, 퇴근길에도. 여전히 그런 순간들을 마주할 때면 놀랍고 당황스럽지만, 어린 연차 때 반드시 부당함을 짚고 넘어가야 직성이 풀렸다.


막내작가 시절, 그녀는 아이디어도 없고, 평소에는 일도 안 하던 선배가 후배의 아이디어로 전체 회의 때 발표를 하고 칭찬받는 순간들을 자주 목격했다. 조무래기 시절에는 쫄아있는 게 일상이어서 '이곳은 이렇게 일을 하는 곳이구나'라는 바보 같은 생각을 하기도 했다. 방송작가는 글을 잘 쓰는 것도 중요하지만, 말을 조리 있게, 또 재미있게 해서 자신의 의견을 설득시키는 것이 아주 중요하다. 그리고 작은 아이디어라도 자신을 보여줄 수 있는 중요한 요소가 되기 때문에 허투루 흘려보내서는 안 된다. 그녀는 여전히 조무래기였지만, 이 바닥의 생리를 알아가면서 입을 열기 시작했다. 그리고 후배의 아이디어를 열심히 설명하는 선배의 말이 끝나면 조심스럽게 깜빡이를 켰다.


"아, 그런데 그 아이템은 무한도전에서 했던 꼬리잡기처럼 하겠다는 건 아니고요. 조금 변형을 해서 생각한 건데요..."


눈치 빠른 이 바닥 사람들은 그녀의 말뜻을 정확히 이해했다. 그리고 후배의 아이디어를 갈취한 선배는 당황하며 그녀의 의견을 최대한 빠르게 정리했다. 그녀는 부당함을 요령껏 이겨나갔다.


[30대]

하지만 그녀가 가장 참을 수 없는 건 '돈'이었다. 방송작가의 처우가 많이 개선되었다는 건 어느 정도 인지한다. 막내 시절을 어떻게 보냈는지를 글로 적어 내려간다면 눈물 없이 들을 수 없고, 누군가는 라떼 토크 지겹다며 들은 체도 안 할 것이 분명하기에 말을 아낀다.


개선되었다는 방송작가의 처우가 여전히 부당하다고 느끼는 포인트는 명확하지 않은 페이 시스템이다. 특히 기획료의 경우 프로그램에 따라 50~100%의 페이를 받는데, 그 기준이 주먹구구식이라는 것이다 (기획료는 연차에 따라 차등 지급되고, 어린 연차일수록 퍼센티지는 올라간다). 기획 기간이라고 일주일에 3일만 출근하는 것도 아니고, 어쩌면 기획 기간이 더욱 바쁜데도 불구하고 주급이 50%만 나온다는 것이 쉽게 납득되지 않는다. 하지만 그게 이 세계의 룰이라고 하니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


그리고 수요일 이후에 첫 출근을 하는 경우 그 주에는 아예 페이를 받지 못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이것도 이 세계의 룰이라고 하니 받아들이라고 하지만 부당함에 치가 떨리는 건 어쩔 수 없는 노릇이다. 하지만 그녀의 돈은 고사하고 가끔 후배들이 제대로 받지 못한 돈 때문에 부들부들하고 있는 모습을 보고 있으면, 그것만큼은 참지 못하고 조금이라도 받아주기 위해 윗분들과 대화를 시도한다. 어릴 때였다면 '이건 아니지 않아요?'로 시작했겠지만, 흥분하지 않고 감정에 호소하는 쪽이 더 먹힌다는 사실을 깨달은 후 최대한 안타까운 어조로 말문을 연다.


불의를 보면 참지 못하는 여자는 나이를 먹어가면서 현실과 타협하기 시작했다. 그녀가 부당하다고 여기는 요소들은 절대 줄지 않았지만, 사회생활이 내 마음대로 되는 경우가 거의 없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면서 억지 타협을 시작했다. 그리고 진실로 자신의 감정을 드러낼 수 없는 현실에 맞닥뜨린 그녀는 자신도 모르는 사이 유행어를 만들어냈다.


"그럴 수 있지."


서른 중반이 넘어갈 때까지도 그녀는 자신이 이 말을 자주 사용한다는 사실을 인지하지 못했다. 그런데 어느 날 친구에게서 한 번, 남자 친구에게서 한 번 지적을 받았다.


"너 그 말 진짜 자주 쓰는 거 알아?"

"그거 인정하기는 싫은데 어쩔 수 없다, 뭐 그런 뜻인가?"


같은 엄마 뱃속에서 나와 같은 환경에서 자란 형제, 자매와도 매일 같이 의견 대립각을 세우는데 일평생 다른 노선을 달리다가 우연히 환승 구간에서 만난 타인과 매번 같은 생각을 한다는 건 불가능한 일이다. 하지만 모든 순간 내 생각이 맞다고 우길 수 없지 않은가. 그런 의미에서 어떤 상황을 마주했을 때 '그럴 수 있지'를 내뱉는다는 건 순순히 인정할 수 없지만 당신의 마음은 잘 알겠다는 '회피형' 대답이다.


회의를 할 때도, 친구와 대화를 할 때도, 연인과 이야기를 나누다가도 '그럴 수 있지'라는 말은 수시로 흘러나왔다. 수학여행 가는 기차 안에서 직설적 언어로 부당함을 표하던 그녀가 세상과 타협하는 방법 중 하나로 '네 의견에 동조하지 않지만, 더 이상의 논쟁은 피하겠다'는 절반의 백기를 든 것이다. 하지만 확실한 건 굳이 언쟁을 할 필요가 없는 경우에만 사용한다는 것이다. 반드시 관철시켜야 하는 대화 속에서는 사용하지 않는다.


그녀의 '그럴 수 있지' 습관을 지적했던 남자 친구는 급기야 그녀가 하루에 몇 번이나 그 말을 사용하는지 세어주겠다고 했다. 마치 하루에 다섯 번 이상 사용하면 꿀밤을 먹일 것처럼 경고하는 듯한 말투로. 누군가에게 지적을 받게 되면 의식적으로 그 언행을 조심하듯, 결국 그녀는 '그럴 수 있지'라는 말을 거의 사용하지 않게 되었다. 코너에 몰리는 상황 속에서 타협의 결말이 회피인 것은 그리 아름답지 못한 것임을 깨달았다. 말이 좋아 타협이지 회피라는 것은 상대의 의견을 묵살하는 것과 같은 의미일 수도 있겠다는 반성까지 했다. 그리고 풀어서 말하는 법을 선택했다.


"너는 그렇게 생각하는구나. 나는 이렇게 생각해."

"그런 마음이 드는 것도 충분히 이해가 돼요."

"제 생각과는 조금 다르지만..."


단순히 그 상황을 회피하는 것보다는 상대의 생각을 한번 짚어주고 인정하는 부분은 확실히 인정하는 것. 그렇게 나는 부당한 상황 속에서 몸서리칠지언정, 말로써 도망치지 않기로 스스로와 타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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