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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몽상가 J Oct 21. 2022

'남 탓'이 기본

대학을 졸업한 지 10년이 훌쩍 지났지만 지금도 기억나는 한 장면이 있다.


교양 과목 수업 도중 네 명씩 짝을 지어 대화를 나누는 시간이 있었다. 교양 과목이다 보니 다양한 학과의 학생들이 모여있었고, 아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교수님은 최근에 경험한 속상했던 일을 서로 나눠보는 시간을 갖자고 하셨고, 네 명의 그룹원들은 돌아가면서 자신의 이야기를 털어놓았다. 무슨 이야기를 해야 할지 고민을 하던 중 용기 있게 한 사람이 입을 열었다. 그녀는 친구 A와 있었던 일을 서술했다. 차분한 어투로 말을 하는 그녀가 한참 동안 이야기하는데, 나는 이야기가 끝날 때쯤 꽤 충격을 받았다.


"저는 사실 놀랐어요. 이야기를 다 들어보니 당연히 속상하셨을 것 같고, 그 문제의 발단은 너무나도 A에게 있다고 생각하거든요. 그런데 이 이야기를 하시는 동안 단 한 번도 A를 탓하지 않으셨어요. 오직 본인의 감정에 대해서만 이야기하셨어요."


실제로 그랬다. 우리는 나와 친구, 나와 타인의 이야기를 늘어놓을 때 은연중에 타인을 깎아내리거나, 상대 탓을 하면서 내 감정을 합리화시키려고 노력한다. 상대가 나에게 이런 식으로 해서 내가 상처받았으니 나의 감정에 동조해달라는 것. 어떨 때는 감정에 호소하겠다는 작정으로 나와 트러블을 일으킨 상대의 표정이나 제스처까지 주관적으로 해석해서 이야기의 감칠맛을 더한다. 마치 그 순간 내가 느꼈던 감정을 리얼하게 설명해서 나의 언행이 그럴 수밖에 없었음을 증명하려는 듯이.


하지만 그녀는 그렇지 않았다. 자신을 화나게 한 A에 대한 이야기는 있는 그대로의 팩트만 전달할 뿐, A를 탓하거나 A의 나쁜 점을 굳이 들먹이지 않았다. 그녀는 오직 자신의 감정이 얼마나 속상했는지를 주관적으로 전달할 뿐이었다. 그 포인트를 이야기하는 순간 다른 두 명의 팀원들도 놀라워했다. 분명 A라는 친구를 욕하거나 할퀴어도 모두가 인정할 만한 내용이었는데, 그녀는 끝까지 친구에 대한 감정적 언어를 사용하지 않고 말을 맺었다.


남 탓하지 않고 이야기를 한다는 게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


사회생활을 하면서 우리는 참 많은 순간을 경험한다. 그리고 또 수많은 유형의 사람을 마주한다. 나의 절친한 작가 B양이 그런 명언을 남긴 적이 있다. 


"나를 열렬히 사랑해 주는 남자를 만나도 하루가 멀다 하고 싸우는데, 오직 생계유지를 위해 만난 사람들 마음이 퍼즐 조각처럼 딱딱 맞으면 그게 더 미스터리한 거지."


하물며 가족도 내 마음을 온전히 이해해 주지 못하고, 사랑한다고 물고 빠는 남자를 만나도 10번 중 1번은 대치 상황이 발생하는데, 생계유지를 위해 어쩌다가 또는 억지로 만난 사람들의 마음이 맞는다는 게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는 사회생활을 해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공감할 것이다. 마음이야 안 맞을 수 있지만 작은 트러블로 시작된 관계의 균열이 점차 벌어지기 시작해 걷잡을 수 없게 되면, 단순히 불쾌한 감정을 소모하는 것에서 끝나지 않는다. 친구나 동료, 또는 상사에게 상대의 험담을 늘어놓게 된다. 상대가 나에게 했던 일련의 모든 언행을 고발하는 행위.


하지만 우리는 알고 있다. 손뼉도 마주쳐야 소리가 나듯 어떠한 사태에서 한쪽의 잘못만으로 트러블이 생기는 경우보다는 쌍방의 잘못으로 문제가 커진다는 것을. 물론 험담의 기본은 자신의 잘못은 쏙 빼놓고 타인의 문제점만 열거한다는 것이다. 그 순간만큼은 양심의 가책도 느끼지 못한다. 그저 '쟤가 나 괴롭혔어! 혼내줘!'라고 떼를 쓰는 아이처럼 타인의 잘못을 최대한으로 부풀려 이야기한다. 


이때 내 이야기를 듣는 사람의 역할이 중요하다. 온전히 나의 입장에서 감정이입을 100% 할 것이냐, 아니면 솔로몬도 울고 갈 만큼 냉정한 판단을 해줄 것이냐. 보통의 화자는 감정이입을 바란다. 자신의 편을 들어주고, 나와 갈등을 빚는 사람을 욕해주길 바란다. 특히 연인들의 경우 이런 상황에서 감정이입에 실패해 더 큰 싸움을 하는 경우를 많이 봤다. 연인의 경우, 감정이 수그러들었을 때 타이르며 잘못된 부분은 지적해도 늦지 않으니 웬만하면 감정이입에 성공하는 편이 추천한다. 나도 무조건적으로 내 편을 들어달라고 떼를 쓴 적이 있다. 오직 내 감정에만 동조해달라고 울며불며 난리를 쳤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고 나이를 먹어가면서 내 입장만 고수하고, 내 감정만 소중하다고 외치는 것이 얼마나 이기적인지를 깨달았다.


“너희 중에 죄 없는 자가 먼저 돌로 치라.”라고 말씀하셨을 때 누구도 선뜻 나서지 못한 것처럼 우리는 모든 순간, 모든 상황에서 온전히 떳떳하기가 힘들다.


타인과 트러블이 발생했을 때 상대의 일방적인 폭력으로 마음의 문을 닫겠다고 선언하기 전에 나는 그에게 어떻게 말했는지, 또 어떤 감정을 내뿜었는지 돌이켜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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