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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몽상가 J Nov 13. 2015

너를 다시 보게 될 거야

어느새 나는 답답해 보였던 깨진 조각이 되어 있었고


2년간, 센스 있는 어휘로 내 마음을 흔들고 있는 H양의 한마디



아주 가끔씩 생각지도 못 했던 상대에게서 위로를 받는 날이 있다.     


그저 시시콜콜한 대화나 나누며 순간의 외로움을 달래려고 했던 만남이었는데 예상치도 못 했던 대화가 전개되면 나는 급기야 그 사람을 신뢰하기로 마음먹는다. 그리고 여느 때와는 다른 자세와 눈빛으로 경청하며 굳게 닫아두었던 마음을 열어 보인다.      


논리 정연하고 똑똑하게 대화를 이끌어가는 사람을 좋아하지만, 불쑥 꺼낸 한 마디에 가슴이 철렁 내려앉을 만큼 감성을 두드리는 대화를 할 줄 아는 사람을 더 좋아한다. 그러나 무엇보다 내가 무슨 이야기를 듣고 싶어 하는지 눈치채고 대화를 리드하는 사람을 가장 좋아한다. 내가 백 마디 말로 구구절절 설명을 하기 전에 상대를 통해 위로받고  치유받는다는 건 정말 행복한 일이니까.   


얼마 전 동갑내기 동료 H양과 술자리에서 나눈 대화가 딱 그랬다.

   

"진짜 마음 안 맞는 사람이랑 일하는 거 너무 스트레스받아. 그만두고 싶어, 정말!"

"다른 곳에 가면 달라지겠냐. 옮긴 곳에서도 분명 널 힘들게 하는 사람이 있을 거야."

"그럼 어떡해. 출근하는 게 지옥 같은데!"

“나를 열렬히 사랑해주는 남자를 만나도 하루가 멀다 하고 싸우는데, 오직 생계유지를 위해 만난 사람들 마음이 퍼즐 조각처럼 딱딱 맞으면 그게 더 미스터리 한 거지. 네가 싫은 건 다른 사람도 싫고, 네가 두려운 건 다른 사람도 두려워. 네가 먼저 바뀌고, 그들에게 다가가 봐. 얼마나 멋질까. 겁쟁이들 눈에는 네가 정말 용감한 사람처럼 보일걸? 아마 너를 다시 보게 될 거야."     


그 자리에서는 에잇, 몰라! 하며 작은 술잔을 연거푸 부어댔지만 집으로 돌아가는 택시 안에서 한참 동안 곱씹어 보았다. 사회에 첫 발을 들였을 때는 어른들의 어색한 갈등 관계를 지켜보는 게 답답해서 겁도 없이 해결사 노릇을 자처하기도 했지만, 사회에서 만난 사람들의 한번 틀어진 관계는 다시 붙여봤자 깨진 조각처럼 틈까지는 메워지지 않는다는 걸 깨달은 후 여태껏 방관자의 삶을 살아왔다. 그리고 ‘저 사람은 왜 저러지. 나 같으면 저렇게 안 할 텐데.’라고 생각하며 끝도 없는 불만을 토해냈다. '저 사람은 왜 저럴까?'하고 꼬집어봤자 허공을 가르는 손짓 발짓에 괜히 내 팔과 다리만 아프다는 걸 알면서도 하루를 버텨내면 어김없이 수만 가지의 불만이 쏟아져 나왔다.     


그런데 H양과 술잔을 기울이며 긴긴 논의를 한 끝에 깨달았다. 어느새 나는 답답해 보였던 깨진 조각이 되어 있었고, 붙여봤자 메워지지 않는 조각이라도 누군가 나서서 붙여주길 바라고 있었다. 어쩌면 ‘살아간다는 것’은 오와 열을 맞춰 짜인 대로 돌아가는 컨베이어 벨트 위에 놓여 있는 게 아닐까.


아니, 어쩌다 나는 이런 어른이 되어버렸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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