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몽상가 J Dec 04. 2015

딸에게 아빠라는 존재

가슴속에서 흐르는 뜨거운 눈물과 같다



나에게 아빠라는 존재가 갖는 의미



5살 때였나. 온 가족이 한강에 놀러 갔을 때 일이었다. 얼굴보다 더 큰 탱탱볼을 가지고 놀던 나는 공의 습성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채 가볍고 통통 튀는 공의 매력에 빠져 있다가 찰나의 순간 한강에 빠트리고 말았다. 그 순간 나는 엉엉 울며 아빠에게 빨리 강에 들어가서 공을 꺼내오라고 떼를 썼다. 공도 공이지만 내게 아빠는 큰 사람이었고, 강에 빠진 공을 건져 올리는 것쯤이야 아빠에게는 식은 죽 먹기와도 같은 일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아빠는 그 공이 아닌 새 공을 사주는 걸로 내 눈물을 멈추게 했다.


아빠라는 존재는 든든했고 한편으로는 용기를 갖고 대적해야 하는 상대였다. 어느 집이나 마찬가지겠지만 딸은 아빠보다는 엄마 편에 서는 경우가 많다. 아빠가 무슨 잘못을 하든, 심지어 엄마가 잘못을 해서 부모님이 말다툼을 하게 되더라도 언니와 나는 아빠보다는 엄마의 편에 서서 일방적으로 아빠를 몰아세웠다.


"엄마가 힘들어서 그랬겠지. 아빠가 이해 좀 하면  안 돼?"


강하고 단단하기만 할 것 같던 아빠라는 존재가 조금씩 무뎌지던 시기도 있었다. 언니와 나, 그리고 동생의 키가 무럭무럭 자라고 머리가 커져서 부모님의 말씀보다는 스스로의 판단으로 인생을 살아가게 될 때쯤 아빠는 집에 있는 시간이 늘어났고, 엄마의  집안일을 도우며 어느새 우리의 끼니를 챙겨주고 있었다.


"밥 먹고 가."

"입맛 없어. 내가 알아서 먹을게, 신경 쓰지 마."


그렇게 조금씩 무뎌지던 아빠는 어느 순간 세상 속에 홀로 서 있는 쓸쓸한 존재로 다가왔다. 퇴직을 하고 사업을 시작했지만 뜻대로 일이 풀리지 않던 아빠가 처음으로 가족들 앞에서 눈물을 보였을 때 나는 '아빠도 울 수 있는 사람이구나, 그동안 정말 외로웠겠다.' 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다짐했다.


'평생 가족을 위해 일했던 아빠를 위해 이제는 우리가 채워가야 한다.'


아빠는 가장으로서 자신이 큰 힘이 되어주지 못한다는 사실에 떳떳함보다는 눈치를 살피는 순간들이 늘어갔고 그런 기운이 느껴질 때마다 나는 속상한 마음과 답답한 마음이 동시에 일렁였다. 가끔씩 엄마와 말다툼을 할 때면 예전처럼 아빠는 자신의 목소리를 크게 내지 못 했다. 그러다가 참았던 설움이 폭발해서  큰소리를 친  다음날이면 아빠는 우리에게 문자를 보내왔다.


"두 딸 미안해.."


나는 그 문자가 싫었다. 그 사과는 내가 받아야 할 게 아니었다. 오히려 힘들어하는 아빠를 위해 손 한번 내밀지 못하고 어릴 때처럼 엄마의 편에서 아빠를 나무랐던 내가 건네야 할 문자였다. 자꾸만 아빠의 존재가 변해가고 작아짐을 느끼는 순간마다 나는  어린아이처럼 소리를 내어 울었다. 마치 나를 지켜주던 버팀목이 사라지고 그 버팀목이 외롭게 받아내던 매서운 바람을 온전히 느끼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아주 잠시였지만 매서웠다. 30년 동안 나를 위해 버텨주었던 아빠를 생각하니 그 바람이 더욱 매섭게 느껴졌다.


당신에게 딸이라는 존재는 무엇일까.

나에게 당신이라는 존재는, 아빠라는 존재는.

사랑하고, 미워하고, 존경하지만, 안쓰러운, 가슴속에서 흐르는 뜨거운 눈물과 같다.


매거진의 이전글 너를 다시 보게 될 거야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