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입술 깨물지 마

마치 오랜 시간 사랑을 나눈 입술처럼, 빨갛게.

by 몽상가 J



당신은 다음번에는 모든 것이 나아지리라고 매번 믿었다.
놀라운 건 당신이 지금도 그렇게 믿는다는 사실이다.

- 윤이형 <굿바이> 中 -


나의 오랜 버릇 중 하나는 시도 때도 없이 아랫입술을 깨무는 것. 무언가에 집중할 때나, 잠이 오지 않는 새벽에 하얀 천장을 바라볼 때, 초조하게 K의 연락을 기다릴 때면 나는 어김없이 아랫입술을 깨물었다. K는 내가 아랫입술을 깨물고 있으면 예쁜 손가락으로 입술을 매만져 주었다.


"이러다 입술 퉁퉁 붓겠어."

"나 또 그랬어요?"

"여기만, 빨개졌어."

".... 섹시하겠다, 나."

"까분다."


K는 눈을 흘기며 나의 사소하지만 잘못된 버릇을 지적하곤 했다. 그럴 때마다 나는 입술을 부드럽게 매만져 주는 K의 손을 내 볼에 가져다 대었다. 다시는 그러지 않겠다는 일종의 대답이었다. 하지만 반성의 기미가 보이기 무섭게 나의 입술은 또다시 빨갛게 부어올랐다. 마치 오랜 시간 사랑을 나눈 입술처럼, 빨갛게.


부어오른 입술이 거울 속에 담길 때면 나는 K를 떠올렸다. 예쁜 손가락으로 부드럽게 보듬어주던 그 손길을 떠올렸고, 핀잔을 주면서도 어린아이처럼 나를 달래던 K의 눈빛을 떠올렸다.


"내 입술만 보고 있나 봐."

"생사람 잡지 마."

"어휴, 응큼한 사람."

"네 입술이 제일 응큼해 지금."


그러나 K의 관심이 조금씩 멀어지던 그때, 나의 오랜 버릇인 아랫입술을 깨무는 행동은 우리 둘 사이에 어떤 의미로도 작용되지 않았다. 아주 가끔은 K가 나를 바라봐주길 바라며 의도적으로 깨물어 보기도 했지만 예상대로 K의 시선은 나의 입술을 피해 갔다.


여전히 아랫입술을 깨무는 버릇을 고치지 못한 나는 이 행동이 느껴지는 순간마다 입술을 쓸어내리던 K의 손길을 기억해내고 만다. 그리고 그리워한다, 나를 달래주던 눈빛까지도.






초조하고 불안하고, 세상모르게 무언가에 집중할 때면 어김없이 나는 아랫입술을 깨물어요. 당신이 걱정하며 하지 말라고 잔소리하던 이 버릇은 쉽게 고쳐지지 않네요. 그런데 참 신기해요. 당신과 헤어진 후에 만났던 사람들 중 그 누구도 이 버릇에 대해 잔소리하는 사람은 없었어요. 왜 그럴까 생각해봤는데...


아랫입술을 깨무는 나쁜 버릇이 당신 눈에만 보였거나 아니면, 당신만큼 날 사랑했던 사람이 없었던 것 같아요.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더 좋아하는 사람이 지는 게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