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당신의 다독임을 기다리고 있어요
내가 가진 것을 주었을 때
사람들은 좋아한다
여러 개 가운데 하나를
주었을 때보다
하나 가운데 하나를 주었을 때
더욱 좋아한다
오늘 내가 너에게 주는 마음은
그 하나 가운데 오직 하나
부디 아무 데나 함부로
버리지는 말아다오.
- 나태주 <초라한 고백> 中
일을 하다가 언성을 높이는 일이 벌어지면 나는 물러서는 법이 없었다. 당신은 이걸 잘못했고, 나는 당신의 주장을 이해할 수 없고, 이런 식으로는 당신과 일을 할 수 없다는 말을 해야만 직성이 풀리는 성격이었다. 그러나 K는 평화주의자였고 언성을 높이는 걸 극도로 싫어하는 부류였다. 일을 하다 내가 언성을 높이는 걸 목격하면 K는 조용히 나를 불러냈다.
"화내고 싸우면 괜히 네 마음만 힘들고 다치는 거잖아. 조금만 참아봐."
"내가 잘못한 게 아니잖아요. 지금 나 혼내는 거예요?"
"그냥 네가 힘들까 봐... 걱정돼서 그러는 거지."
K는 절대 혼을 내는 게 아니고 나를 위해 마음을 다독이는 거라고 했지만, 말투는 단호했고 표정은 더 차가웠다. 미간에 잡힌 주름은 필시 내가 화를 내는 게 못마땅하다는 신호였다. 나는 그런 K의 태도가 서운했다. 내 편이 되어서 상대방의 험담은 못할망정 지금 나한테 화냈다고 혼을 내는 K가 미웠다. 말이 아닌 표정으로 드러난 서운함이 이미 K에게도 닿았겠지만, 그럴 때만큼은 K도 내 마음을 쉽게 달래주지 않았다. 결국 꼬리를 내리고 반성하는 쪽은 나였다.
K의 차가운 다독임에 어느 정도 감정이 사그라들면 나는 다시 온화한 사람으로 변했고, 언쟁을 벌였던 사람에게 사과의 제스처를 먼저 보냈다. 모든 상황이 종료되면, K는 나에게 잘했다고 눈짓을 하거나 귀여운 이모티콘을 보내 마음을 달래주었다. 그게 나를 길들이는 K만의 방식이었다. 그렇게 나는 K가 구구절절 말을 꺼내지 않아도 눈빛 하나로 그의 마음을 읽게 되는 사람이 되어갔다.
다정하게 사랑만 줄 것 같았던 K와의 이별 후 가장 힘들었던 건, 내가 어떤 행동을 하든 K가 나를 달래주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사춘기 소녀처럼 이목을 끌기 위해 K 앞을 서성이며 신경을 거스르게 해도 나는 테두리 밖에 존재하는 공간 같은 존재였고, 네가 어떤 행동을 하고 누구와 언쟁을 높여도 관심이 없다는 무언의 신호를 받아내야 했다.
하지만 나는 K의 곁을 떠나지 않았다.
'나는 당신의 다독임을 기다리고 있어요'라고 말하는 사람처럼.
당신이 나를 보고 찡긋하던 눈이 생각나요. 나는 그 눈이 정말 좋았어요. 마치 나만 볼 수 있는 세상 같았으니까. 당신의 이면을 모르는 사람들에게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찰나의 순간일 테니까.
그러다가도 당신이 미간을 찌푸리며 이야기하면 난 갑자기 얼음이 되어서 꾸중을 듣는 어린아이처럼 입술을 내밀고 반성하는 눈빛으로 용서를 갈구하죠. 그 시간은 왜 이렇게 더디게 흐르던지. 괜히 허리춤으로 손을 밀어 넣으며 안아달라고 칭얼대도 받아주지 않는 그 시간이 눈 깜박하면 지나가는 시간처럼 흘러가길 얼마나 기도했는지 알아요?
그런데 이 글을 쓰고 있는 지금은 그 시간이 그립고, 돌아가고 싶고, 당신을 안고 싶어요. 우리의 시간이 그리워서, 나에게 닿아있던 당신의 감정을 잊을 수 없어서. 잊을 수 없는 시간들이 자꾸만 쌓여가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