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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몽상가 J Apr 11. 2020

프리랜서는 자유롭지 않아요

얼떨결에 사회적 거리두기 모범생이 되었다

대다수의 사람들이 코로나19 사태로 인해 강제 칩거 모드로 살고 있다. 나 역시 자주 출몰하던 강남, 상암, 홍대, 이태원 등 수많은 인파가 포진되어 있는 지역을 최대한 피하고 있다. 주말에는 두 탕의 약속을 뛰던 사람이 집순이로 돌변하여 집에서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시도하고 있다. 남에게 민폐를 끼치는 것도 싫고, 타인으로부터 피해를 입는 것도 싫기에 꼭 필요한 만남이 아니면 전화나 문자로 대체하고 있다. 아주 기본적인 형태의 사회적 거리두기 운동을 실천 중이다.


사생활은 그렇다 치고, 일은?


나는 프리랜서 작가다. 대다수의 사람들은 '프리랜서'라는 단어를 오해한다. 일하는 시간을 내 마음대로 조율할 수 있고, 심지어 쉬고 싶으면 언제든 쉴 수 있다고 생각한다. 물론 짜인 규격이 없는 건 사실이다. 프리랜서 작가의 삶에서 규칙이라는 건 1도 찾아볼 수 없다. 대개 우리의 출근 시간은 오전 8-9시가 아니다. 이른 시간에 불려 나가는 경우도 있지만 보통 점심시간이라 불리는 시간대에 출근을 한다. 그리고 소개팅을 나갈 때마다 단 한 번도 답하지 못했던 '몇 시에 퇴근하세요?'라는 질문에는 매일 다르다고 얘기할 수밖에 없다. 만약 프리랜서가 말 그대로 프리하게, 자유롭게 일을 하는 직업이었다면 내 대답은 한결같았겠지. '제 마음대로요^^'


자유의 프리가 아니면 도대체 프리라는 단어는 왜 붙은 건데?


14년간 프리랜서 작가로 일을 해본 결과 '프리랜서'의 '프리'는 자유가 아니라 공짜라는 뜻에 가깝다. 흔히 공짜로 주는 음식을 프리라고 하지 않나? 그 Free에 가깝다.


왜냐고?


본격적인 일에 앞서 기획 단계에서는 페이의 50%를 받거나 못 받는 경우가 허다하고, 친분을 미끼로 무상 도움을 요구하는 경우도 비일비재하다. 그래서 Free는 자유가 아닌 공짜가 맞다. 열정 페이에 익숙한 직업! 세상이 바뀌면 나아질 거라 믿어보기도 했으나! 믿는 도끼에 처참하게 발등을 찍힌 이가 한 둘이 아니다.


모든 업계가 힘들다는 이야기는 들었다. 프리랜서 작가 역시 코로나19 사태의 영향을 받았고, 여전히 받고 있다. 기획하는 프로그램은 줄줄이 엎어지고, 일 잘한다고 인정받던 동료 작가들이 자의 반 타의 반으로 백수가 되어가고 있다. 나 역시 준비하던 프로그램이 엎어지고, 지금도 기다리고 있는 몇 개의 프로그램은 무한 딜레이 상태로 목숨만 부지하고 있다. 해외를 나갈 수도 없고, 지방을 가는 것도 문제가 되고, 불특정 다수를 만나는 것도 불가능하고, 사람이 많은 곳은 더더욱 피해야 하니... 도대체 할 수 있는 일이 없다. 있던 프로그램도 없어지는 마당에 신규 프로그램 론칭이라니... 언.감.생.심!


덕분에 수입은 없고, 시간은 넘쳐나는 자유로운 사람이 되어버렸다. 원치 않는 자유를 얻게 된 프리랜서!


그러다 보니 얼떨결에 사회적 거리두기 모범생이 되었다. 강제로 집순이가 되어버린 나를 보는 가족들의 시선 속에는 '다소 낯설지만 다행'이라는 안도감이 실려있다. 밤낮으로 사람 만나는 걸 좋아하는 애가 이 시국에도 정신 못 차리고 돌아다닐까 봐 걱정했음에 틀림없다. 나도 뉴스를 보는 사람이고, 사태의 심각성을 인지하는 '어른'이거늘.


아무튼! 모든 일이 올스톱 되어버리니 집에서 할 수 있는 취미 생활을 모두 시도해보았다. 대청소를 하거나, 반년 배운 어설픈 캘리그래피도 하고, 가장 좋아하는 책을 쌓아놓고 읽거나, 쇼핑몰 장바구니 가득 담기 등 시간을 보낼 수 있는 모든 아이템을 시도했다. 그러나 모든 호기심에는 한계가 있고, 즐겁게 시작했다가도 금방 지쳐버렸다. 심지어 삼시 세끼 다 챙겨 먹어야 건강하다는 신념을 갖고 있던 나는 영 소질이 없는 요리에도 손을 대기 시작했고, 그 결과, 맛없는 음식을 잔뜩 먹은 건강한 돼지가 탄생했다. 갑자기 불어난 몸무게를 확인하던 순간, 이렇게는 안 되겠다 싶어 동네의 숨은 운동길을 찾기에 이르렀다. 서울 외곽에서 왕복 3시간씩 출퇴근을 반복하던 프로 출근러였기에 하루에 만보를 채우는 건 숨 쉬는 것과 같은 일이었다. 그런 내가 집에 꽁꽁 박혀만 있으니 아무리 홈트를 하고 집 앞 산책을 나간다 한들 성에 찰리 없었다.


한적한 낮 시간대를 이용해 호수 공원을 몇 바퀴씩 돌기도 하고, 유명한 쇼핑몰로 향하는 길을 따라 걸어도 가보고(들어가지는 않고 바로 턴해서 돌아옴), 처음 알게 된 숲길을 찾아 먼 길을 걸어가 보기도 했다. 매일 출퇴근을 할 때는 우리 집이 서울이 아니라는 게, 이토록 멀다는 게 무척이나 서럽고 짜증 났는데... 조용하고 사람 없는 운동길을 발견할 때마다 그저 감사했다. 10000보, 13000보, 18000보... 점점 늘어가는 걸음수와는 달리 눈곱만큼 빠지는 킬로수를 확인하며 이 사태를 이겨내는 하나의 방법으로 다이어트를 성공해 보겠다고 다짐했다. 늘어나는 건 걸음수뿐만이 아니었다. 어른들이 왜 사시사철 꽃 사진, 풍경 사진에 열을 올리는지 이해하지 못했는데, 어느새 내 사진첩에는 친구들과 찍은 셀카가 아닌 자연을 담은 사진들로 가득했다. 그리고 집에 돌아오면 가족들에게 오늘 찍은 사진을 자랑하기에 이르렀다. 




언제쯤 이 시간이 끝날지 모르겠다. 사람이 없는 시간, 사람이 없는 거리, 사람과 거리를 두고 살아야 하는 삶이 얼마나 지속될지, 그리고 비어 가는 통장의 곡소리가 멈춰질 그 시간이 언제일지. 마음 한구석이 불안하고 위태롭지만, 만보기가 채워지는 순간만큼은 어쩐지 평화로움이 느껴지는 아이러니한 일상이 지속되고 있다. 


일하는 시간 속에서 절대 자유롭지 않지만, 어쩌다 보니 자유로워진 프리랜서처럼.

그저 이 상황이 아이러니하기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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