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일 : 행복하려고
밤새 대본을 쓰다가 이런 생각이 들었다
작년 크리스마스와 12월 31일, 그리고 1월 1일까지 쉬지 않고 대본을 써 내려가면서 들었던 생각을 끄적여보려고 한다. 그 생각을 왜 지금 꺼내보냐면, 방금 대본을 수정하다가 다시 그 마음을 먹었기 때문이다.
프리랜서 방송작가라는 직업은 장단점이 아주 많다. 특히 페이와 관련된 장단점이 정말 확실한데, 레귤러 프로그램을 지속적으로 하지 않으면 돈을 모으기가 어렵다는 단점이 있고 (그나마 요즘은 기획료를 잘 챙겨줘서 기획 프로그램이라도 들어가 있으면 100%는 아니어도 돈이 나오긴 한다), 반대로 메인 프로그램 외에도 시간과 에너지를 잘 운용하면 아르바이트 겸 외부 일을 할 수 있기 때문에 부수입을 마음껏 벌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방송작가는 연차가 오를수록 시간적 여유가 생기기 때문에 아르바이트를 하기가 더 용이하다. 물론 메인으로 어떤 프로그램을 하느냐에 따라 다른 일을 병행할 수 있는지 없는지가 결정되기도 한다. 다양한 조건에 의해 프리랜서 작가들은 투잡, 쓰리잡을 뛸 수도 있고, 한 개의 프로그램에 올인을 해야 할 수도 있다. 그게 프리랜서의 가장 큰 장점이자, 안타까운 단점이 될 수 있는 것.
나의 경우는 작년 초까지만 해도 어쩌다가 한 번씩 부수입이 생기곤 했는데, 하반기부터는 시간적 여유가 없더라도 일단 일이 들어오면 무조건 할 수 있다고 일을 받았다. 이 바닥이 워낙 인맥 싸움인지라, 일단 인맥을 만들고 보자는 계획이었다. 혼자서 할 수 없는 일은 후배와 함께 나눠서 했고, 일단 하겠다고 한 일은 무리를 해서라도 끝까지 마무리 지었다.
작년 하반기부터 투잡을 열심히 뛴 이유는 코로나19 때문에 상반기에 거의 수입이 없었고 (지금 생각해도 너무 착잡했던 시간들), 무리를 해서라도 투잡을 뛰었을 때 입금되는 페이를 보면 피곤이 싹 사라지기 때문. 그래, 결국 돈 때문이다. 어차피 다들 돈 벌자고 일하는 거잖아?
그런데 가끔 밤을 새우면서까지 투잡을 뛸 때면 내가 무슨 부귀영화를 누리겠다고 이렇게까지 일을 하나 싶은 마음이 들지만, 그럼에도 이를 놓지 못하는 이유는 단순히 돈 때문이 아니었다. 한 해의 마지막 날, 그리고 첫날에도 쉬지 않고 대본을 쓰면서 '나 왜 이렇게 열심히 살지?'라고 스스로에게 물었을 때 내 대답은 '행복하려고'였다.
'행복하다'라는 건 너무나도 주관적인 생각이기 때문에 개개인에게 내려지는 정의가 다를 것이다. 그렇다면 나에게 행복이란 어떤 것일까? 내가 행복이라고 칭할 수 있는 순간들 중 한 가지는 내 사람들에게 베풀 수 있는 순간, 바로 그때다. 열심을 일을 하고 돈을 벌어서 나를 위해 쓰는 부분도 당연히 있겠지만, 가장 행복한 순간은 내 사람들에게 여유로운 마음으로 베풀 수 있을 때였다. 물론 심적으로 도움을 주고, 힘이 되어줄 수도 있겠지만, 특별한 날, 지치고 힘이 들 때, 지인들에게 맛있는 걸 사주거나 소소한 선물이라도 건넬 때면 그게 그렇게 기분이 좋았다. 하지만 내가 경제적으로 불안정하거나 부족할 때는 마음이 있더라도 금전적 행위를 쉽게 이행할 수 없다. 그럴 때면 스스로가 무능력해 보이고, 그런 현실이 답답하게 느껴졌다. 그게 나에겐 불행이었다.
나는 그 행복을 위해 일을 한다. 스스로의 행복을 위해, 그리고 내 사람들의 행복을 위해. 타인의 행복이 나의 행복이 되는 순간을 위해, 나는 오늘도 열심히 대본을 썼다. 그게 유일하게 내 뜻대로 할 수 있는 일이니까. 그리고 내가 제일 잘 할 수 있는 일이니까.
당장 몇 분 뒤면, 프리랜서도 피해 갈 수 없는 월요병이 찾아오겠지만, 나는 이번 주도 열심히 뛰기 위해 준비한다. 내가 뛰는 만큼 행복은 쫓아올 테니까. 그 믿음 하나로 열심히 뛰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