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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kelly Dec 28. 2023

마음만은 벌써 바쁜 백수

고용해 주셔서 진짜 감사하긴 개뿔 

하루하루를 디데이 날짜만 보고 상상의 나래를 펼친다. 내가 백수가 되어도 생계를 유지할 수 있을까? 지금 가진 자산으로 얼마나 백수로 살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을 하다가 디데이가 아직 두 자릿수라는 사실에 될 대로 되라지 싶어 진다. 백수가 되어도 규칙적인 삶을 살아보고 싶어서 그동안 하지 못했던 일을 위시리스트로 작성하기 시작했다. 


1. 매일 오전 헬스장 가기

2. 못 읽었던 벽돌책 일주일에 1권씩 깨부수기

3. 다이어리 및 일기 쓰기

4. 박사 학위 관련 연구

5. 브런치에 1일 1 글 하기

등등...


여러 가지 위시리스트를 작성하고 보니 이걸 다 하려면 회사 다닐 때보다 더 바쁘고 정신없게 살아야 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하지만 오히려 좋다. 해야 하는 루틴을 정해놓고 정신없이 지내다 보면 이너피스를 얻어 정신 및 육체의 건강을 모두 회복할 수 있을 것 같다는 희망찬 미래가 그려졌다. 


늘 한 3개월 앞의 수익이 예상이 됐어야지만 마음이 편했던 나인데 살아생전 처음 다음을 생각하지 않고 오로지 나를 위해서 쉬는 시간을 갖는다니 두려우면서도 기대된다. 문제는 이제 회사를 나가기까지 어떻게 관계를 정리하는지인데 솔직한 마음에서 다신 안 볼 사람들이라고 생각하고 싶은데 또 그렇게 막 나쁜 인연은 아니었던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물론 일하면서 불편하고 짜증 나는 사람이 있었다고 한들 그 사람이 뭐 인간적으로 나쁜 사람이었던 건 아닌 것 같고... 퇴사하는 마당에 이러쿵저러쿵 큰소리를 만들기 싫다. 그냥 조용히 물 흘러가듯이 사라지고 싶다.


이렇게 마음으로 그리고 계획으로는 준비가 다 된 퇴사이지만 실제로 퇴사하기까지는 아직도 60여 일 정도 남았다. 물론 연차소진까지 생각하면 그것보다 빠르겠지만.... 지금 당장은 정해놓은 위시리스트대로 백수생활만 보내도 아주 알찬 백수생활을 할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여태 남의 눈으로 나를 보며 이 정도는 해야지. 이 나이면 여기까지는 와야지.라고 모든 것을 움켜쥐고 있었다면 또 다른 도약을 위해서 잠깐 재정비하는 시간을 가질 준비를 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백수생활이 그저 놀고 쉬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그 간 비어있던 나의 어느 한 공간을 채울 수 있는 시간이길 바란다. 


그래서 나는 바쁜 백수가 될 예정이다. 지금까지 계속 무언가를 생산하면서 사는 삶이었다면 이제는 내면을 채우는 시간이 될 것이다. 이걸 생각하니 하루라도 빨리 퇴사하고싶은 생각이 든다. (물론 이것 때문만은 아니다.) 직장이라는 울타리를 나와 백수로 살게될 내가 걱정도 되지만 한편으로는 이런 것도 경험해봐야 다음 직장을 구했을 때 직장에서의 자아실현이라는게 이런거구나를 알게되지 않을까? 아직까지는... 직장에서의 자아실현, 욕구충족, 자존감 확립보다는 마른 수건 쥐어짜고있다는 생각을 하고있는것 같다. 하지만 내가 몸담았던 직장이 망하길 바라지 않는다. 더 내가 있었던 조직이 고꾸라지길 바라지 않는다. 여전히 회사에서 우리 팀을 제일 좋아하고 우리 팀에서 이뤄지는 일을 좋아한다. 하지만 복합적인 이유로 퇴사하고자 하며 지금은 직장인이지만 퇴사예정자이며 예비 백수로서의 나도 건승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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