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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 위의 집

by Artist K

2014년 11월 레오의 수프


나는 그의 수프를 마녀의 스프라고 부른다.

처음 그가 이 수프를 끓였을 때 우리는 배부르게 먹고 나서 티브이를 보다가 어느샌가 깊은 잠에 빠져버렸다. 아마도 당시의 피곤한 일정 때문이었으리라.

그 뒤로 나는 먹고 나면 잠들어버리는 이 수프를 마녀의 스프라고 이름 붙였다.

그럼에도 성격 급한 그가 모든 재료를 잘 썰고 섞어가며 만들어주는 이 마녀의 수프는 정말 따뜻하고 맛있다.


그가 왔다. 베를린에서 머물다 떠난 지 한 달하고 열흘 정도 지나 다시 내게 와서 지난여름처럼 수프를 끓여주었다. 혼자서는 절대 하고 싶지 않은 요리.

수프를 좋아하지만 뜨거운 음식에 매우 취약한 그를 보면서, 호호 불어가며 수프를 먹는 그를 보면서 행복하게 식사를 했다.

행복했지만. 그럼에도 우리는 알았다. 가슴에 커다란 돌덩이 하나씩 얹고있는 서로를 바라보며 따뜻한 수프를 천천히 삼켰다. 가끔 내 무거운 돌 때문에 걷기조차 힘들 땐 나도 모르게 그를 아프게도 하지만. 그래도 이 어둡고 칙칙한 독일의 겨울에 우리. 함께 있다는 것.

이 작은 방이 마녀의 수프 냄새로 꽉 찰지언정 우리. 같이 이 차가운 세상 따뜻하게 살아낼 수 있다는 것.

참. 좋다.


2017년 8월

새로 이사 온 곳에서 물건을 정리하다가.. 발견한 일기.

베를린의 그 오래된 아파트를 기억한다.

참으로 가난했지만 아름다웠던 시간을 기억한다. 베를린이 내게 언제나 아련한 것은 어쩌면 그 장소가 아니라 그 시간 때문인 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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