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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Kelly KyuHyang Lim Sep 05. 2018

만 스물넷에 갤러리 대표가 되고 느낀 점

미술계에도 예외가 없는 무례한 사람들.


삼십대의  막연한 멋짐을 기다려왔다.
만 서른 살을 한 달 남긴 나를 스스로 자축하며
드디어 이 글을 쓸 수 있게 되었다.



여기 한국에서는 나이가 들수록 움츠러 드는 경향이 있는데 특히 여자일 경우 나이에 관해 떠도는 편견이 배가된다. 나는 그런 세상의 분위기와 완전히 반대였다. 20대 때의 나는 레벨 게이지가 덜 채워진 듯한 나의 나이를 밝히는 것이 편치 않았기에 오히려 나이를 부풀려 말하는 경우도 있었다. 가장 큰 이유로서는 내가 택한 직업과 위치 , 그에 따른 환경에 있었다.


스물여섯에 갤러리를 오픈하여 아마도 최연소  갤러리 대표자가 되었다. 타 갤러리 대표들은 보통 내 부모님 세대가 주류를 이루었고 내 나이 또래의 미술계 인력들은 보통 어시스트나 보조 큐레이터였으며 아무리 신진작가나 청년작가라 해도 최소 이십 대 후반에서 서른 살 중 후반은 되었기에 나는 어디에 가나 가장 어릴 수밖에 없었다. 30대 후반까지도 청년작가로 구분되는 미술계에서 이십 대 중반의 나이는 사실 부화조차 하지 않은 달걀 수준이었던 것이었다.


결코 나이에 자유롭지 못한 한국사회에서 나의 나이나 결혼 유무는 일을 하면서 종종 사람들의 관심거리의 대상이 되었다. 딱 보아도 너무나 어려보이는 사람이 페어장에 있으면 대표님 어디 있냐? 불러달라 는 질문을 수없이 받는데 이 정도 오해는 오히려 즐거웠다.




갤러리 오픈 초창기에 한창 작가를 서치하고 섭외하던 때에 어떤 작가의 작업실에 처음 방문하여 작품을 구경하는데 아무런 맥락 없이 돌연 작가가 이런 말을 던진다.


“혹시 xx 학교 서양화과 나오셨어요?”


순간 그 뒤에 어떤 말이 나올지는 이미 예상한 뒤였다. 나의 까마득한 모 선배에게 내 이야기를 하니 후배로서의 나를 잘 안다고 했단다. (내가 신입생 때 하늘 같은 고학번 선배였고 난 졸업한 지 이년밖에 되지 않았다.) 이렇게 내 학번이 공공연하게 들통남으로서 디렉터와 작가와의 관계성이 와르르 무너지는 순간이었다. “학연 지연 나이”에 얽힌 짧지 않은 대화가 오고 간 뒤 묘한 기류가 흘렸다.


그야말로 Too Much Information인 내 학번을 확인사살 후 족보가 정리된 듯 그 “내 까마득한 선배의 친구”였던 작가의 살짝 딱딱했던 태도는 급기야 돌덩이가 된 듯했다. 디렉터와 작가의 관계에서 일을 진행하는 데에 있어 서로가 몇 학 번인지 몇 살인지는 아는 것이 이렇게나 불필요하다.




전시를 마치고 뒤풀이 자리에서 어느 작가가 갑자기 그 자리의 모든 사람이 들을 수 있게 아주 큰 소리로 이야기했다. 순간 정적이 흘렀고 모든 사람이 우리를 쳐다보았다. 역시 앞뒤 맥락은 없었다.


"규향씨, 내가 규향씨 학교 선배인 거 알아요?”


내가 기획했던 전시의 작가들과 함께했던 자리였다. 좁은 미술계에서 , 또 그 안의 몇 안 되는 예술학교에서 몇 다리만 건너면 누구나 선배고 선배의 아는 사람 또는 아는 사람의 아는 사람이 되는 세계며 모두가 학연으로 엮여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하지만 전시를 만들어나가고 함께 한 수고를 자축하는 자리에서 그 사실이 정말 모두가 알아야 할 만큼 중요했을까? 또한 기본적으로 작가님, 관장님 또는 대표님 아니면 선생님이라고 서로를 불러주는 미술계 특유의 호칭이 존재한다. 회사와 같은 위계질서 시스템이 아니라 각자의 위치에서 서로를 존중하며 상생해야 하는 생태계에 있으니까.


그 작가는 끊임없이  나이와 학교, 선배와 같은 단어들을 언급하며 내가 아무리 작가를 아우르는 기획자라 할지언정 본인이 내 선배라는 타이틀 안에 내가 자신의 아래라는 계산에 나를 상기시켜 대입시키려 노력하는 것 같았다. 그 이후 선배에게 잘 보여야 한다의 농담 섞인 이야기가 이어졌던 것 같은데 나는 터무니없는 듣기 싫은 말을 들으면 부분적으로 기억을 지워 버리는 이상한 능력이 있기때문에 문장은 기억나지는 않지만 광장히 무례하게 들렸던 것만 기억이 난다. 심지어 대학 선배도 아닌 고등학교 선배였다는 것이 관건.

나중에는 누가 내 초등학교 선배라며 찾아올까 무섭다.




한 아트페어장에서 어떤 갤러리 대표가 내게 다가왔다.  


“어머자기~이 작품 너무 좋다 ~이거 누구야? 어떻게 섭외했어? 나 소개하여주면 안 돼?”


갤러리스트에게는 작가가 보물이고 재산이다.  같은 처지에 있는 입장에서 마저 이런 상도덕이 무너지는 이야기를 , 내가 아무리 나이가 어리다 한들 일터에서 저러한 호칭과 문장을 심지어 반말로 한다는 것은 내가 기분 나쁜 것보다 저 사람 자체의 진정성과 프로페셔널함에 대해 의구심이 들게 했다. 본디 성격이 그렇거나 친밀감을 위해 그렇다 했을지라도 내 기준을 상당히 넘은 것들이였다.


언제나 그랬듯 이러한 상황에서 나의 외면적 반응은 무덤덤이다. 그렇다 할 대답도 내비치지 않지만  아예 무시도 하지 않는다. 말도 안 되는 물음에는 적당히 대화를 마무리하는 것이 낫다는 생각이 들어서이다.




비 미술인들은 미술계 사람들은 좀 더 진보적이며 교양 있고 우아하다고 생각할지도 모르나 현실은 이러하다. 어디에나 있는 회사 안의 나이만 먹고 무능하지만 꼰대질이라고는 다하며 무례하기까기한 과장님이 이곳에도 존재하는 것이다.


이런 일련의 에피소드가 있을 때마다 난 내 나이가 50쯤 되었다면 이런 소릴 듣지 않았겠지 싶은 아주 원색적인 생각을 하기도 했다. 너무 어린 내 나이가 자랑스러웠으면서도 원망스러웠다. 이런 경험이 있다 보니 어린 작가들이나 비슷한 또래의 작가들을 대할 때 , 심지어 작가로 활동하고 있다면 그 사람이 후배이든 동생이든 나도 모르게 편한 말이 나오지 않을까 조심하며 더욱 예의 있게 호칭을 심사숙고하며 무례를 범하지 않으려고 더욱 신경쓰게 되었다 .


나이에 자랑스러운3 자를 달고도 여전히 일터에서 누가 내 나이나 결혼, 심지어 연애유무마저 물으면 난 에둘러 대답하곤 한다.


하지만 실질적으로 나와 가장 밀접한 작가들은 단 한 번도 내 나이를 궁금해 하지도 묻지도 않았다.몇 년간 함께 일을 해 오면서도 개인적인 질문은 단 한 번도 받지 않았고 나또한 그들에게 그러했다 .


여기에서 모든것이 설명된다  .

작가는 작품으로 말하고

기획자는 전시로 보여주면 된다는것 ,

본질은 그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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