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도 힘겹게 헬스장으로
내가 세상에서 가장 부러운 사람은
먹는 것을 위해 시간과 노력을 투자하는 것이 귀찮아 그냥 가만히 있는 편을 선택하는 종류의 사람이다.
신기하게도 예술 쪽에 종사하는 사람들 중에 마른 체형을 많이 본다. 특히 작가들도 그렇다.
"먹는 게 귀찮아서요"
"입맛이 없어서요"
"작업하다 보면 시간이 가서 먹는 것을 까먹어버려요"
어떻게 그럴 수가 있지? 먹는 것을 까먹는다니...?
난 먹는 것만 기다리는데...
그 이야기를 듣고 난 후 적잖이 충격을 받았지만 나와 다른 "종"(species) 같아 보이는 그들은 꽤나 많이 존재했고 공통적으로 가볍고 날렵한 체형을 지니고 있었다. 불필요한 지방 따위는 허용하지 않는 프로페셔널 같아 보이기에 부러운 그들 .
나는 식성이 좋아 사춘기 이후 줄곧 다이어트와의 싸움을 해왔다. 먹고 싶은 것을 다 먹으면 무조건 살이 쪘고 살찌지 않으려고 늘 다이어트를 달고 살았다. 아니 달고 살아야 하는 운명을 타고났다.
대학생까지는 시간이 많으니 하루에 세 시간씩 운동하며 태릉인처럼 살기도 했다. 그러다가 다시 폭식증이 찾아오면 하루에 4끼도 먹었다. 좋아하는 빵집에 가서 10개가 넘는 빵을 사 와 하루에 다 먹어치우기도 했다. 이런 걸 보고 섭식장애라 한다는 것을 나중에 알았다.
지금도 내 인생은 다이어트를 할 때와 하지 않을 때 두 가지로 나누어진다. 다이어트를 할 때는 자신감이 넘쳐 일의 생산성도 늘어난다. 내가 살쪄 있다고 생각할 때는 외모에 자신감이 현저하게 떨어져서 일에도 악영향을 미친다. 위험한 건 내가 스트레스를 받을 때마다 먹는 것으로 푸는 습관이 있다는 것이다. 그렇지만 먹는 것은 너무 행복하다. 맛있는 것을 먹는 것을 그만두는 건 괴롭기만 하다. 특히 빵과 케이크는 내가 끊기 힘든 악마같은 음식이다.
그래서 하루 일상 중 내가 가장 많이 하는 고민은
내일 뭐 먹지?
그런 이유로 내 인생에는 헬스장이나 어느 한 가지 운동이라도 하지 않고 있는 기간은 없다. 어떤 운동이라도 일단 끊어놓는다. 최근에는 코로나 격상 단계 때 헬스장 영업을 금지시키는 바람에 무기력을 겪었다. 무력감은 음식 같은 자극적인 것들을 땡기게 했다.
피자 떡볶이 빵,, 잠들기 직전까지 음식물로 배를 가득 채운 채로 잠들기를 두 달 .
충격적이다. 스커트가 맞지 않는다. 즐겨입던 크롭티도 입지 못하게 되었다. 당장 내일 출판사에서 인터뷰 오기로 했는데 입을 옷이없다니 자기혐오가 몰려온다.
역시 내 몸은 거짓말을 하지 않는구나.
자기혐오와 과도한 자기애가 힘겨루기를 하는 나의 자아.
그래서 다시 운동을 시작했다. 사실 다이어트는 경험이 많기 때문에 어렵지 않다. 방법은 알지만 실천하는 것이 어려울 뿐이다. 한 가지 장애물은 학생 때와는 달리 사업을 하는 내게는 운동할 시간이 너무나도 부족하다는 사실이다.
갤러리에서 퇴근하면 7시 반 , 집에서 간단히 저녁을 먹고 조금 휴식을 취하고 헬스장에 도착하면 간신히 8시 반이 된다. 9시 40분만 되면 헬스장 직원이 음악을 꺼버리고 제발 좀 가주세요 하며 무언의 시위를 하기 때문에 눈치 없는 회원이 되기 싫어 웬만하면 그전에 자리를 뜬다. 내게 주어진 운동할 시간은 1시간이 겨우 되는데 이마저 저녁 약속이 생기거나 중요 미팅이 생기면 하기 힘들다. 사업을 하면서 1주일에 3번 운동가 기는 하늘에 별따기다.
오늘도 집에 오자마자 운동복으로 바로 갈아입은 채로 밥을 먹는다. 애초부터 식탐이 없어서 적당히 먹고 운동도 조금만 해도 된다면 얼마나 좋을까? 나는 할 일이 너무나도 많은데 이렇게 다이어트로 쓸데없는 시간과 돈을 쏟고 있는 것은 아닌가 하면서 서럽기도 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헬스장으로 무거운 발걸음을 옮기는 원동력은
운동은 공정하다는것
하는 만큼 성과가 보이기 때문이다. 안 먹고 운동하면 살이 빠진다. 먹고 운동하지 않으면 살이 찐다. 매우 단순한 알고리즘이다. 하지만 나의 미술사업은 그렇지 않다. 아니 예술은 말이다. 노력만으로 성공할수 있는 것이 아니다 . 나는 이렇게 열심히 일하는데 왜 나를 알아주지 않는 거야? 하는 것은 어리석은 생각이다.
우리는 생산성 있는 노력을 꾸준히 해야 한다.
예술을 잘 만드는 것과 예술을 잘 파는 것은 다를지언정 심지어 열심히만 하는 것이 아니라 "잘" 해야 한다는 것이 중요하다. 하지만 운동과 식습관 다이어트는 잘하던 못하던 그저 꾸준히 트리밀에 올라가서 열량을 소모하고 덜 먹으면 되니 얼마나 단순한가.
미술비즈니스는 열심히 준비한 것과 결과는 결코 비례하지 않는다. 번갯불에 콩 볶듯 급하게 기획하여도 기대보다 성과가 더 잘 나왔을 때 도 있었지만 오래간 준비했던 프로젝트도 노력에 비해 성과가 좋지 않았던 적이 더 많다. 그래서 나는 동시대에 가장 생산성 있는 노력은 무엇일까에 대해 고민하며 오늘도 헬스장으로 터덜 터덜 향한다.
그래도 운동은 날 배신하지 않겠지 하는
한가닥의 기대를 걸고서
러브컨템포러리아트
임규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