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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Kelly Jun 06. 2023

그가 유럽여행을 마치고 돌아왔다

잊을만하니 그가 돌아왔다.

그의 유럽여행 계획은 꽤나 오래전부터 계획해 왔었고 때마침 그것이 결혼 후였고 우리 아이들 4살, 5살 연년생에, 24일 동시 입원했던 그 시기. 그가 계획했던 유럽여행이 다가온 것이다. 그는 아픈 아이들을 뒤로하고 27일 친구들과 유럽여행을 떠났다.

유럽여행 건으로 반년을 티격태격해왔고 한두 달은 냉전 기간으로 안 보고도 지냈지만 상황이 달라지는 건 없었다.


유럽 여행 떠나기 전날 어머님께서도 남편에게 뭐라 하셨고, 나도 짜증이 극에 다다라서 비정상인 건 알고 가라고 했다. 그 과정에서 말다툼이 커지면서 남편은 퇴근후 병원에 오지 않았고, 아이들 걱정만으로도 힘든 내게 자기가 유럽여행 안 갈 테니 육아와 집안일을 반반씩 하고 생활비도 똑같이 내자며 생뚱맞은 걸 갖다 붙여 화풀이를 해댔다.


이제 겨우 애들 좀 키워놓고 등하원 시간 방해받지 않도록 풀근무도 아닌 아르바이트하고 있는 사람에게 금전적 압박은 참 치졸하다고 생각했다. 전업일 때부터 그래왔기에 이렇게라도 일을 시작한 것이다. 일 시작하자마자 아이들은 아팠고 친정엄마가 봐주신 날이 더 많다.

남편은 내 아킬레스건을 잘 알아서 무엇을 건드리면 미치는지 아는데 그게 우리 친정엄마다.

그저 우리가 잘 살길만을 바라는 우리 엄마를 참 자기 마음대로 잘도 씹어대곤 했다.

너네 엄마가 평생 전업이라 너도 보고 배워서 내 등골 빨아먹고 사는 기생충처럼 사는 거지? 납작 기어서 엎드려서 살아.라는 말은 평생 잊지 않을 것이다. 툭하면 너네 엄마.

사람을 다 갈기갈기 찢는 말을 뱉곤 했다.


이번에 내 인생에서 아웃시켜 버렸다.

유럽여행 가기 전날까지 계속 같은 말만 반복하며 화를 돋우는 그에게 당장 와서 애들 보고 여행 가라고 했고 그는 계속 화내며 버티다 결국 병원에 와서 내게 사과하고 떠났다. 캐리어 끌고 병원 와서 가식적인 모습으로 사과하고 가는 그의 뒷모습이 처량해 보이기까지 했다.


그리고 다음날 눈을 떴는데 난 병원.

그는 스위스 융프라우라고 톡이 와있었다.

그 후 차단했고 난 그가 그동안 뭘 했는지 아무것도 모른다.


그리고 돌아온 그에게 물었다.

혹시 병원에 있는 동안 사진 보냈냐고.

보냈다고 한다.

속으로 욕이 절로 나왔다.

앞으로는 눈치 좀 챙기고 살라고 말했다.


그의 폰으로 사진을 보는데 그의 얼굴이 참 맑았다.

애들 아픈데 좋았나 보네? 한마디 해주었다.

같이 사진을 보다 말도 짧은 둘째가 아빠를 바라보며 말한다.


"우리 좀 더 크면 같이 가요"

내가 우리 아이들에게 너희가 좀 더 크면 엄마가 좋은데 많이 보여줄게! 그랬었는데 그걸 기억했나 보다.


사진이 정말 멋지긴 했다.

그가 여행 중 느꼈을 많은 감정 중 아빠로서 자리를 지키고 함께 했어야 할 책임과 의무를 하지 못한 점. 그에 대한 반성도 있었으면 좋겠다.


그래도 내가 일을 다니고 있었기 때문에 괴로움을 잊고 지낼 수 있었다. 친정엄마 도움으로 어려운 시간을 잘 견뎌냈고, 아이들도 다 회복되었다.


남편의 삶을 다 이해해 주기엔 나도 힘들었다. 가족이 우선이라 생각했던 내 기준에서 남편의 독단적 결정은 충격이었고, 받아들이기 힘겨웠다.

끝을 생각할 정도로 많은 일들이 있었다. 단지 유럽여행 건으로 만 헤어짐을 생각하진 않았다. 많은 일들이.. 복합적으로 있었던 것이다.


우린 개인으로 놓고 보면 꽤 괜찮은 사람들인데 같이 있으면 아주 나쁜 사람이 되거나 때론 악마가 된다.


아빠가 돌아와서 아이들이 참 기뻐하는 모습이다.

나는 그 모습에 안도감을 느꼈다.

아이들이 아빠를 많이 보고 싶어 했기 때문이다.


나와 연락이 닿지 않아 자기 마음대로 매장에서 추천해 준 양가죽 가방을 사 왔다. 샤넬 가방 고르면서 사람들이 양가죽은 비추라고 했다고 말했었는데 다른 브랜드의 양가죽 제품을 사 온 것.

제일 먼저 그걸 꺼내 안겨주는데 가기 전 했던 게 생각나서 그다지 고맙다는 표현은 못 했다. 사실 이렇게 마음에 안 차는 가방을 주는 것보다는 속상하게 안 했으면 좋겠다.


이것저것 선물을 많이 챙겨 왔는데 그냥 습관처럼 사진만 찍어놓고 더는 뭐라 표현할 수가 없었다. 기분이 그냥 그러했다.

아이들 낳기 전 스벅 컵을 모았었는데.. 남편이 나름 생각해 준다고 독일과 이탈리아 머그컵을 구해다 줬다. 그런데 볼 때마다 생각날 것 같아서 당분간 사용 못 할 것 같다.


마음이 꽤 많이 다쳤고 지쳤고 힘들었다.

얼굴 보니 더 힘들다.

며칠은 갈듯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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