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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여전히 애송이 Jul 20. 2024

네 번째 첫 출근, 그리고 나는 마음먹었다

새 직장에서도 쫄지 않고 일하는 마음가짐이란 


네 번째라도 처음은 언제나 떨린다.


설렘만큼 큰 두려움을 안고 첫 출근을 하는 날, 새로 산 가방과 사무실에서 쓸 개인용품을 챙겨 집을 나섰다.


양치세트, 다회용 컵, 다색펜,

그리고 제출 서류도 빠짐없이.


운 좋게도 약 한 달의 자유를 누릴 수 있었지만 그중 스무날 넘게 몸이 좋지 않아 집에서 요양을 해야 했고, 딱 열흘만 신나게 놀았다. 또 언제 다시 올지 모를 좋은 기회였는데 이 몸뚱이는 왜 때맞춰 탈이 나는지.


아무튼 첫 출근이 일주일 앞으로 다가왔을 때는 제발 회사에서 부득이한 사정이 생겼으니 일주일 늦게 출근하라고 하기만 간절히 바랐는데… 역시 우주의 기운이 모이기란 쉽지 않군.





출근 당일


간밤에 눈을 감고 누웠으나 밤새 정신이 말똥말똥했던, 잤으나 자지 못 한 밤이 지나고 아침 일찍 집을 나섰다. 9시까지 오라고 했지만 20분 정도 일찍 도착했다. 또 너무 일찍 도착하는 건 월요일을 맞이한 담당자에게 부담스러운 일 같아서 잠깐 시간을 보낼 겸 라운지에 앉아 공용공간을 둘러봤다. 면접 때 곁눈질로 스쳐 본 때와는 달리 여기저기 꼼꼼히 봤는데 역시나 참 좋은 공간이다. 공교롭게도 내가 다녔던 회사 셋 중 둘이 인테리어로는 빠지는 회사가 없었다. 다들 멋뜨러진 공간과 시설을 가졌던 터라 꽤 만족하며 지냈는데 이번에도 나쁘지 않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생각해 보면 공간의 퀄리티가 직장 만족도에 상당한 영향을 미치는 것 같다. 특히 요즘 젊은 사람들에게는 더더욱. 모든 것이 낡고, 부족하고, 허름하면 공간은 커녕 조직 자체에 애착 형성이 불가능할 테니 말이다. 물론 이것이 절대적인 또는 가장 첫 손에 꼽는 이유가 되지는 않겠지만 어쨌든 이직을 고려하게 되는 요소 중 하나임은 틀림이 없다. 


 그런 의미에서 일단 이 회사는 합격. 


넓고, 자유롭고, 트렌디함마저 엿보이는 라운지에서 내 입사 동기들은 온몸으로 티를 내고 있었다. 덥고 습한 장마철 한가운데 우리는 모두 각 잡혀서 딱 떨어지는 정장을 입고 있었으니. 긴장한 낯빛으로 담당자의 뒤를 졸졸 쫓아가 반나절 교육을 듣고 나니 궁금했지만 차마 물어보지 못했던 부분이 어느 정도 해소가 되었다. 그 이후로는 소속 팀에 합류하여 짧고 굵은 인수인계를 받았다. 하루 8시간의 근무시간을 꽉 채운 것도 아니었는데 퇴근길에 오른 몸이 어찌나 무겁던지 씻고 저녁을 먹고 나니 잠이 그야말로 쏟아져 생전 자지 않던 저녁잠까지 살포지 자고 말았다. 대단한 일을 것은 아니지만 그것보다 무거운 긴장감을 짊어지고 있었으니 체력이 고갈이 되었음이라.


그럼에도 불구하고 첫 출근날의 첫인상 역시 합격. 


무엇보다 마음에 든 것은 지금껏 다녀본 회사 중 가장 규모가 크고 업력이 긴 회사였기 때문에 그들이 가지고 있는 내공이 느껴졌다는 것. 자세히 설명할 수는 없으나 회사도 최근 2~3년 사이에 큰 변화를 겪으면서 그에 따른 혼란이 분분했다고 했다. 여전히 그 혼란이 깨끗하게 걷힌 것은 아니지만 어느 정도 해결된 것처럼 보였다. 물론 그 내공이 요즘 트렌드와는 다소 동떨어져 있더라도 일단은 회사를 하나로 묶는 힘은 분명히 가지고 있는 것처럼 보였으니 그 부분은 긍정적이었다.







첫 출근의 낯섦이 익숙함으로 바뀔 즈음 

나는 스스로 포지셔닝을 마쳤다.


이곳은 최종 목적지가 아니라 경유지일 뿐.
경유지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최대한의 즐거움을 맛보고 떠난다!


이곳을 평생직장으로 생각하지 않고 내가 성장할 만큼 성장하고 또 다른 곳으로 떠날 것이라는 생각을 하고 나니 내 마음껏 일을 욕심내볼 수 있을 것 같다. 오래 이곳에 머물면서 좋은 평가를 반드시 받아야 하고, 그래서 승진도 하고, 월급도 많이 올라야 한다는 점에 초점을 맞췄다면 슬프게도 걱정이 더 클 수밖에 없는 환경이다. 다만 그런 것들보다 새로운 환경에서 또 다른 빛깔의 레퍼런스를 쌓아보자는 것에 초점을 맞추니 어떤 눈치도 보지 않고, 어떤 관계에도 얽매이지도 않는 것. 즉, 회사가 세운 방향성이라는 커다란 반죽에 내 개성을 담뿍 담은 무늬만 정성껏 새겨 넣으면 되겠다 싶은 거다. 이렇게 마음먹으니 팀 내 사람들의 관계성이나 입지 같은 것보다 오롯이 일에 집중할 수 있게 되었다. 


이제 내가 해야 할 일은 이 마음가짐을 계속해서 유지하는 것뿐. 

이정돈 할 수 있잖아?! 우리 모두 다 돈 받고 일하는 프로니까 말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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