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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kelvinstyle Jan 02. 2024

세일즈 333의 법칙

회사문화 답사기 2

세일즈 시작 3일만 넘기면 3개월을 쉽게 버티고, 3개월이 지나면 3년을 버틴다는 '세일즈맨 333의 법칙'이 있다.


첫 직장 B2B 직판영업의 선배님들 말씀이었다.


신도리코 입사 과정에서 두 번 속았다.

면접에 나온 선배 면접관의 질문은 마케팅이란 무엇인가? 였습니다. 영문학을 공부했던 저는 경제용어로 대답하지 못하고 소비자의 마음을 사는 모든 과정이며 그중에 영업이 제일 중요하다고 대답했다. 신도리코가 마케팅 회사인 줄 알았다. 영업이 곧 마케팅인 줄 알았다. OJT 하면서 고객 앞에서 잡상인 취급 당하면서 신도리코는 세일즈 사관학교라는 것을 알았다. 오늘도 걷고 내일도 걷는 방문영업 회사였으니까.


영업선배들의 멋진 모습에 매력을 느꼈다. 공공기관을 담당하던 대리님과 기업영업을 담당하던 대리님의 젠틀하고 카리스마 있는 모습에서  신도리코의 세일즈는 멋지겠구나 했다. 지점에 배치받은 후 1일 20 방문, 신규방문과 재방문 비율 7:3, 월 판매가망고객은 판매목표의 10배 확보 등으로 모든 업무는 '영업활동과 고객니즈분석 결과에 따른 숫자'로 철저히 관리되고 평가받았다. 영업은 숫자이고, 숫자가 곧 인격이었다.


OJT를 시작했다.


1주일 안에 1일 100장의 명함을 받아오는 것이 목표였고 고객과 대면하여 카탈로그 전달과 구매니즈 확인까지 하는 것이 임무였다.


에게는 구로공단이 배정되었다. 87년 여름 그때 구로공단은 수출보국의 메카였고, 수백 개의 공장들이 들어서 있었다. 방문할 곳은 지천에 널려 있었다.


그러나 방문목표달성의 장애물이 두 가지 있었다.

하나는 공장과 공장 간의 거리였다. 한 공장에서 다른 공장사이 간격은 최소한 100미터가 넘는 점과 또 하나는 반드시 경비실을 통과해야 사무실로 갈 수 있는 것이었다.


3일 차까지 하루에 100장 명함은 불가능해 보였다.

첫날 30장, 둘째 날 40장, 셋째 날도 40장~~


삼일동안 목표달성을 못하고 있는데 도심지역을 배정받은 동기들은 쉽게 1일 100장의 명함 받기를 성공하고 왔다. 그들은 빌딩 서너 개만 타면 다닥다닥 붙은 사무실 공략만 하면 되었기 때문이었다.


나흘째 되던 날

결심을 단단히 하고 구로공단으로 향하는 지하철을 9시 이전에 탔다. 현장에서 9시부터 공장을 방문해야 한 장의 명함이라도 더 받겠다 싶었다.

점심도 거른 채 오후 3시경 공단 안의 한 염색공장 앞에 섰다.


'주식회사 녹기염색'


당연히 경비실이 있었다. OJT때 배운 대로 당당하게 경비실 앞에서 방문용건을 밝히고 구매담당자를 만나고 싶다고 했습니다. 단 번에 거절당했다.


1차 거절 시 행동요령이 있었다.

잠시 물러나 있다가

-경비가 느슨해졌을 때 입 통과를 한다.

-다른 손님이 들어갈 때 일행인 척 위장 통과를 한다.


나는 잡입통과를 시도했다.


경비실을 다 벗어날 무렵 뒤에서 저를 부르는 신경질적인 소리가 들렸다. "어이! 거기!!"


저는 사람이 아니었고 거기 있는 사물이었다. 이후 순간적으로 경비아저씨에게 슈트 뒷덜미를 잡혀서 질질 끌려 나왔다.


"죄송합니다. 저는 신입 영업사원입니다. 오늘 총무팀 담당자님 명함 한 장만 꼭 받아가게 도와주십시오."


사무자동화의 효율을 제공하는 전문기업은 온 데 간데없고 그냥 명함 한 장이 필요한 거였다.


경비아저씨는 사무실로 전화를 걸어 직원 한 명의 명함을 받아서 저에게 건네주었다. 아마도 그 회사 터줏대감이셨던 모양이었다.


너무도 속이 상한 스물여섯 청년인 나는 공단에 흐르는 시커먼 하천 뚝에 가방을 내려놓고 앉았다. 수차심에 자존심에 '나'를 버리지 못한 탓에 울었다. 영업을 그만두고 싶었다. 회사를 그만두고 싶었다. 입사 1개월 차니 다른 회사 취업을 할 수도 있었다.


그러다 그때까지 받은 명함을 세어보았다.


육십 다섯 장이었다.


영업을 그만두더라도 지금까지 받은 명함이 아까우니 오늘 백장을 채우고 그만두자 하는 마음이 생겼다. 열심히 공장을 방문했다. 오후 7시가 지나니 공장은 문을 닫아 더 이상 갈 곳이 없어서 시내로 이동하여 유통상가단지를 발견하고 사무실들을 돌면서 명함을 받았다. 그중에는 부동산 사무실도, 과일가계도 있었다.


100장의 명함을 손에 쥐고 OJT룸으로 복귀하니 저녁 10시였다. 당시는 교육생 전원이 복귀해야 교육이 마무리되었기에 모두 기다리고 있었다.


박수를 받았다.


100장의 명함 받기 달성을 축하받은 거다.


기분이 좋았다.


목표달성의 성취감이 샘솟았다.


결국 3주간의 영업 OJT를 무사히 마무리하고 지점으로 배치를 받고 과장님께 아침저녁으로 방문숫자 체크와 가망고객 체크를 당하며 숫자가 일상이고 인격인 3개월을 지났다. 이후 신기하게 방문공포도 사라지고, 거절도 익숙해지고, 잠재고객과 가망고객을 가려내는 기준도 서기 시작하면서 무난하게 매월 매출목표를 달성해 나갔다.


세일즈는 3일을 버티면 3개월을 버티고, 3개월을 버티면 3년은 버틴다는 '세일즈 333의 법칙'에 순응하고 있었다.


그렇게 2년 8개월을 신도리코 세일즈맨으로 각 잡혀가며 B2B세일즈 전문가의 꿈을 키워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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