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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kelvinstyle Jan 05. 2024

고객님께서 사주셨습니다!

회사문화 답사기 3

87년 당시「사무 자동화 : Office Automation」라는 단어는 대중에게 생경한 단어였다. 지금처럼 컴퓨터도 휴대폰도 없었고, 대기업에서도 모든 보고서를 종이에 손으로 작성하여 검은색 서류케이스에 끼워서 보고 및 결재 상신을 하였다.



부서 배포가 필요하거나, 고객에게 전달할 모든 자료 또한 종이문서로 회람하거나 여러 장이 필요한 때에는 복사기(현재의 복합기)를 이용하여 복사 후 배포 및 전달을 하던 시기였다.



대학교 앞이나 구청 앞에는 어김없이 '복사점'이 있었고 학생들은 대학서적이나 리포트를, 직장인들은 필요문서를 돈을 주고 복사를 해서 사용하였다.


당시 복사기 한 대는 대략 500만 원 정도로 그 당시  개포 주공 아파트 13평 매매가격이 1600만 원이었으니 웬만한 사무실들은 구매를 하지 못하고 외주 복사를 이용하고 있었다.



나는  공장 및 사무실들을 방문하면서 회사에서 교육받은 대로 다음과 같은 논리로 고객의 구매니즈를 유도하였다.


1. 연간 복사량 * 복사 1매 단가 + 직원이동시간에 비례한 인건비 계산


2. 총비용=(직접구매비용+간접구매비용)+(기회상실 시간비용) 계산


3. 총비용 * 5년 총액을 복사기 1대 가격과 비교



정밀한 계산은 아니지만 꽤 일리가 있는 사무업무생산성 향상을 위한 복사기 구입 검토라는 과제를 제안하기에는 무리가 없는 논리였다. 오랜 시간이 지난 후에 구매업무를 접하고 보니 구매의 제1원칙이 '비용절감'이고 이를 위해서 TCO (Total Coat Ownership) 전략을 수립하는 것이 대단히 중요하다는 것을 알았다.



신입사원인 나의 1호 판매제품은 팩시밀리였다.


당시 사무자동화 기기의 대표제품은 복사기와 팩시밀리였고 픽시밀리(FAX) 가격 또한 고급제품은 500만 원이었다. 때마침 200만 원대 보급형 팩시밀리가 출시되었고 당시 가격은 290만 원이었다.


수출이나 기업 간 거래에서도 문서를 팩시밀리를 이용하여 주고받는 트렌드가 형성되고 있던 시기였고 고가의 기기이다 보니 구청 앞이나 도심 상가에는 유료로 팩시밀리를 이용하여 문서를 전송하기도 하였다.



당시 1건의 문서 발송료는 2천 원 정도였고, 그때 자장면 한 그릇이 500원이었으니 외주 문서발송이 많은 곳은 비용과 시간투입의 불편함이 상시 있었기에 2백만 원대 팩시밀리 광고는 소규모 기업들의 구매니즈를 자극하기에도 좋았다.



신도리코 영업은 매일 20건의 신규방문을 통해 축적된 고객명단을 가지고 재방문약속을 하고 지속적인 구내니즈 파악과 예산확보 시기를 파악하여 고객을 집중관리하는 루틴이었다.  


가끔씩은 신문광고를 보고 지점으로 제품문의 전화가 오기도 핬는데 이것을 우리는 UC(User Call)라고 불렀다. 87년 8월 중순쯤, 신입사원 배치 2개월 만에 내가 담당하는 지역에 있는 업체로부터 팩시밀리 구입문의전화가 왔다.



카탈로그와 계산기, 검은색과 빨간색 볼펜, 명함지갑을 서류가방에 넣고 문의처 고객기업에 방문했다.


다소 외곽에 위치한 거리 일충에  십여 평 남짓한 작은 사무실이었으며 사무실 한가운데에 지금 약 이미터 정도의 큰 도넛같이 생긴 스테인리스재질의 기계가 한 대 놓여 있었다. 사무실 위 가로로 된 간판에는 '경북기계공업'이라고 적혀있었다. 큰 도넛기계는 군복을 세탁하는 대형세탁기였다. 세상에 태어나서 처음 보는 기계였고, 영업의 장점은 어디든 방문할 수 있고 새로운 사람과 모르던 업종과 제품 및 서비스를 알게 된다는 것이 큰 매력 중의 하나라는 점을 발견해 나가는 계기가 되었다.



"안녕하십니까? 신도리코에서 문의전화를 받고 왔습니다. 팩시밀리에 대한 문의전화 주셔서 감사합니다"


깍듯하게 폴더인사와 함께 고객의 용건에 대한 정리를 담은 멘트를 드렸고 카탈로그를 펼친 후 사장고객님께 팩시밀리의 기능에 대한 설명을 상세히 드렸다.


삼분쯤 설명을 하고 팩시밀리의 기능에 한 가지 추가용도에 대한 설명도 보태었다.


"이 제품은 복사기능이 있어서 사무실에서 한 두장 복사가 필요한 경우에 복사기로도 사용이 가능합니다"


원플러스원 기능을 강조함으로써 경쟁사 제품 대비 가격경쟁력 및 기능경쟁력을 더한 것이다.



사장고객님은 인자하신 성품으로 설치가 언제 가능한 지 물어 오셨고 차주에 설치하는 것으로 약속하고 변심하시기 전에 얼른 계약서를 꺼내서 서명 날인까지 마치고 계약금 10% 도 내일까지 입금시켜 달라는 당부와 함께 나의 제1호 판매계약을 성사시켰다.



기분이 좋았다.


그러나 완벽하게 좋지는 않았다.


온전히 세일즈 프로세스를 밟아서 계약을 이룬 것이 아니라 세일즈의 기본과정(타기팅-신규방문-재방문-구매니즈확인-예산확인-구매행동확인-견적-경쟁극복-협상과 테스트 크로징-구매확정-계약)을 여덟 단계를 건너뛰어 바로 계약이 된 것이기에 나의 세일즈 성과가 아니었기 때문이었다.



고객님이 사주신 것이다!!


감사하는 마음으로 지점으로 돌아오면서 더욱 열심히 고객빙문과 제안을 강화해서 제2호 판매, 200호 판매를 달성하리라 다짐했다. 200호 판매까지는 채 이년이 걸리지 않았다. 첫 판매에 고객님이 사주신 행운이 지금까지 세일즈와 마케팅을 하면서 잊히지 않는 추억의 장면이다.



십 수년이 지나서 제1호 판매고객 '경북기계공업' 사무실을 찾아보았을 땐 이전을 하였는지 사라지고 없어서 이쉬움이 들었고 돈 많이 벌어서 더 큰 사무실로 이전하셨을 거라는 믿음과 응원을 빌어드리며 스물여섯 청년 세일즈맨 나의 흔적을 되새겨보았다.



지금도 제1호 계약으로 제품을 사주신 고객님께 깊은 감사를 드린다. "사장님!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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