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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kelvinstyle Jan 12. 2024

200대 1

회사문화 답사기 5

사무자동화 전문기업 신도리코에서 2년 8개월 차가 되었다. 앳된 새내기 세일즈맨의 티를 벗고 매월 세일즈타깃 2천만 원, 3천만 원을 달성하며 지역을 할당받고 B2B방문영업을 무난하게 유지하고 있었다.


그즈음 마음속에서 강한 도전욕구가 생기고 있었다.


매일 동일한 루틴으로 신규방문과 재방문을 하면서 고객과 고객 사무실의 업무환경을 관찰하고, 제품구입에 대한 계획이나 고객의 의지와 태도 등을 살피면서 Direct sales process를 차근차근 전개하고 일정기간이 지나면 판매계약으로 성사시키는 영업의 일상에 더 이상 세일즈의 발전이 기대되지 않았다.


이직에 대한 꿈을 꾸고 있던 어느 날 아침 사무실에 지치 된 조간신문에서 '삼성전자 경력사원 공개채용' 전면 광고를 보았다. 얼른 신문을 챙겨서 가방에 넣고 사무실을 나왔다.


당시 몇 개월 전에 지점에 함께 근무하던 일 년 선배가 삼성전자로 이직한 일도 있었던 터라 삼성전자 경력공채에 매력을 느끼고 찬찬히 공고 내용을 살펴보았다.


공채 규모는 '0명'이고 정보통신사업부 영업직무였다.

달내로 지원부터 합격발표까지 결정되는 긴급공채였다.

도전하기로 마음먹었다.


이직의 결심은 다음과 같은 이유였다.


나는 세일즈의 전문가가 되고싶다.

두 가지 제품만 세일즈 하는 것은 마스터했고, 다양한 제품을 판매하고 싶다.

영업의 다양한 형태를 확장하여 다른 유형의 세일즈를 하고 싶다.

매월 몇천만 원 매출달성에서 매월 억 단위, 수십억 단위 규모의 더 큰 볼륨의 세일즈를 달성하고 싶다. 복사기, 팩시밀리로 세일즈를 시작했으나 차후 비행기까지 판매하는 세일즈 마스터가 되고 싶다.

지금 현재에 만족하면 퇴보하는 거다. 규모가 큰 대기업으로 가서 새로운 조직문화와 새로운 세일즈 기술과 노하우를 배우고 성장하고 싶다.


스물여덟이었다.

사실 신도리코는 당시 세일즈 사관학교라고 불릴 정도로 엄격하고 세련된 B2B 세일즈 기술과 고객상담 및 협상법에 대해 교육과 코칭을 제공하였기에 대다수의 세일즈맨이 on track으로 성실하게 세일즈 루틴을 유지하면 경쟁력 있는 세일즈맨으로 육성되었다.


나 또한 2년이 지나니 어느 정도 다듬어진 세일즈맨이 되어있었다. 그리고 다듬어진 만큼 더 큰 세일즈에 대한 욕심이 함께 커지고 있었기에 이직을 준비하였다.


89년 8월 늦여름.

이력서와 자기소개서를 정성껏 작성하고 등기우편으로 지원서를 접수했다. 열흘쯤 지난 뒤 서류합격 통보 등기우편이 집으로 왔고 면접일정이 잡혔다.


삼성본관(남대문 근처 과거 삼성화재 건물) 면접장을 들어서고 안내직원의 인솔에 따라 5명이 1개 조를 이루어 면접실로 들어갔다. 나의 면접조에는 제록스 세일즈맨과 롯데캐논 세일즈맨 등이 섞여 있었다.


"경력공채 지원동기가 무엇입니까?"


면접위원의 질문에

"저는 군에서 장교로 근무하였습니다. 전역 후 첫 직장인 신도리코에 입사하여 Direct sale를 2년 이상 수행하면서 직판영업의 프로세스를 익혔습니다. 매월 2천만 원의 목표달성도 무난히 하고 있습니다.


사실 처음 영업을 시작했을 때 큰소리로 고객에게 인사하고 고객을 숙이는 것이 창피하기도 했습니다. 군의 지휘관으로 호령하다가 생면부지의 타인의 사무실 문을 두드리고 인사하는 것에 익숙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신도리코 세일즈 교육과 현장영업의 경험을 통해서 이제는 직판영업의 매력을 크게 느끼고 있습니다.  이직을 결심하고 지원한 이유는 이제 더 큰 규모의 매출에 도전하고 더욱 전략적인 세일즈를 배우고 싶기 때문입니다. 삼성전자는 굴지의 대기업으로 '인재제일'이 사훈인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삼성전자의 세일즈 인재에 도전하고 싶습니다!"


대강 이런 코멘트로 어깨에는 힘을 주고, 양손은 가지런히 무릎 위에 놓고 주먹은 가볍게 지고 살짝 단호한 표정으로 면접위원을 바라보면서 대답을 했다.


그로부터 열흘 뒤쯤 또다시 등기우편이 왔다.


합격이었다!

첫 이직의 성공에 스스로에게 대견하다고 칭찬을 했다. 스스로 이루어 낸 두 번째 직장입문이었고 전문회사에서 대기업으로 성공적인 이직이었다. 이직을 하고 나니 연봉도 오르고 사무환경이나 직원들도 첫 직장 동료들보다 세련되어 보였다.


배치받은 부서는 삼성전자 정보통신부문 OA사업부였다. 당시 삼성전자는 삼성 그룹관계사에 사무자동화 시기 중 하나인 복사기를 제록스로부터 OEM생산을 받아 판매하는 전략적인 영업을 시작한 무렵이었다.


출근 후 과장님께 들은 경력공채 경쟁률은 무려 200대 1이었다고 한다. 최종 나와 또 한 명을 채용했는데 4백 명 이상이 지원했다는 거였다.


대단한 일을 해냈다는 자부심으로 삼성전자의 브랜드로 9년간 다양한 세일즈를 펼쳐 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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