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윤의 생각
김대리와 헤어져 집에 돌아온 희윤은 자신의 방 안에 앉아 한참을 멍하니 있었다.
처음 김대리를 만났던 날이 떠올랐다. 커다란 덩치에 어울리지 않게 표정은 순수했고, 벌레 한 마리도 함부로 죽이지 못하는 성격이었다. 거짓말도 못하고, 회사에서도 요령 없이 소처럼 일만 하는 모습이 답답하게 보이기도 했지만, 그래서 더 믿음이 갔다.
듬직했고, 착했다.
하지만 그 선한 눈가에는 항상 근심이 서려 있었다.
희윤은 알고 있었다. 그 불안의 근원은 경제적 불안정이었다. 결혼처럼 큰돈이 오가는 이야기가 나오면 김대리는 꼭 어두워졌고, 희윤에게 티를 내지 않으려 애를 썼지만 그의 성격상 감출 수가 없었다.
희윤의 머릿속에는 오늘 김대리가 했던 말들이 다시 맴돌았다.
“내가 버는 돈을 다 모아도 부자 되려면 30년이야. 회사에만 매달리지 않고 행복하려면 자산이 필요하다는 건 알겠는데… 방법이 안 보인다.”
그 말 속에 담긴 막막함이 그대로 전해졌다. 김대리의 표정, 씁쓸한 웃음, 그리고 숨기지 못하고 터져 나온 불안.
희윤은 김대리의 마음을 이해할 수 있었다.
늘 성실하게 살아왔는데도 손에 잡히는 건 고작 몇 푼뿐이라는 자괴감, 회사라는 울타리가 언제 무너질지 모른다는 두려움. 김대리는 그 무게를 누구보다도 예민하게 느끼고 있을 터였다.
희윤도 결혼한 지인들을 보며 흔히들 말하는 ‘보통의 신혼’이 무엇인지 잘 알고 있었다.
“호텔 웨딩 아니면 좀 초라하더라.”
“프로포즈 반지? 내 친구는 한강에서 요트 빌려다가 다이아 받았대.”
“신혼집은 얼죽신이지. 대출 나오는 것도 능력이야.”
결혼이 화제로 등장하면 이런 말들이 어김없이 들려왔다.
김대리와 함께 한 친구 집들이 자리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신상 가전으로 가득한 넓은 집을 보고 모두가 감탄하는 사이, 희윤의 마음은 묘하게 불편했다.
'저건 다 어떻게 마련했을까. 쟤가 원래 좀 살았었나.'
돌아오는 길에 친구가 무심히 던진 말이 마음을 찔렀다.
“희윤아, 너희는 언제 할거야? 할거면 빨리 해야지.”
겉으로는 웃어넘겼지만, 김대리의 쓸쓸한 옆모습을 보며 속으로는 마음이 무겁게 내려앉았다.
희윤은 인정했다. 자신도 한때는 그런 화려한 시작을 꿈꿨다. 하지만 오늘 김대리의 이야기를 들으며 확신이 섰다. 그 불안을 더 크게 만드는 게 바로 ‘남들 기준에 맞추려는 결혼’이라는 걸.
'결국 중요한 건 우리의 행복이잖아.'
남들 눈에 어떻게 보이느냐보다, 내가 사랑하는 사람과 매일 웃을 수 있는지가 본질이었다.
집이 조금 작아도, 결혼식이 소박해도, 신혼여행이 화려하지 않아도 괜찮다.
빚더미 위에 앉아 불안에 떨며 사는 것보다, 김대리와 함께 소박하게라도 평온하게 웃는 삶이 더 소중했다.
희윤은 마음이 편안해져 오는 것을 느꼈다.
김대리가 불안에 짓눌려도, 자신이 옆에서 함께라면 그 무게를 덜어줄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무리해서 시작하지 않아도 된다.
지금 내가 사랑하고 있는 김대리와 함께라면,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행복한 시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