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야자키 하야오와 이노우에 다케히코
<어린 왕자>에 관한 기획을 진행할 때, 삽화를 그려주신 윤영선 작가님께 부탁했던 컨셉. 지구에서 보낸 어린 왕자의 1년은 자세히 기록되어 있지 않기에, 그냥 이곳도 들렸었다는 설정으로, <하울의 움직이는 성>과 <슬램덩크>의 그 유명한 가마쿠라 고교 앞 철길을... 그러고 보면 내 인생을 지배하는 컨텐츠.
정신분석에서 관건은 유년 시절의 기억이다. 이 시기가 전(前) 언어적 단계라는 거야. 언어라는 건 그 사회와 개인 사이에 순환하는 상징적 가치를 매개하거든. <어린 왕자>에서도 언급이 되지만, 지금의 시대에 그 언어란 ‘수(數)’와 자본이지. 우리의 에로스는 그 상징계 뒤에 숨겨져 있는 무의식의 힘이라는 거야.
물론 <슬램덩크>에 대한 내 애착도 그 언어를 포함한다. 정말 해보고 싶었던 컨텐츠가 가장 잘 팔리기도 했으니까. 개정판 이야기가 나와서, 다시 한 번 이노우에 다케히코 쪽에... 이번이 세 번째 도전. 내 아무리 ‘포기를 모르는 남자’라지만... 사랑이라는 것도 그렇잖아. 사랑한다면 그 정도의 노력은 있어야지, 하며 내 순정만으로 기다리기에는, 저쪽이 불편해하는 집착일 수도 있고... 통상 3번까지는 봐주지 않나?
미야자키 하야오에 관한 기획도 준비하고 있는 터, 그건 지브리 스튜디오에 연락을 하면 되는 일인데, 이노우에 다케히코는 메일을 확인한 건지조차 알 수가 없어서, 에이전시를 겸하고 있는듯한 슈에이샤(集英社)와 컨택을 준비하고 있다. 그런데 얘네는 왜 이메일로 문의를 안 받는지 몰라. 전화로 하래. 파파고 번역기가 다 소용없다. 이러면 윤석이(대학교 후배, 일본어 교사)만 힘들어지는데...
태규와 윤석이랑 가마쿠라 여행 갔을 때, 도쿄에 들른 하루 동안 여길 갔었거든. 애초에는 슈에이샤를 방문하려던 목적은 아니었고, 고서적거리를 찾아갔는데 거기 있더라. 무슨 인연인가 싶은, 나 혼자만의 기대 심리 같은 게 있잖아.
올해는 어떻게 지나갔는지 모르겠어. 분명 많은 일들이 있었고, 많은 사람들을 만났는데... 그냥 진공으로 들어내진 시간 같다고 할까? 숨 쉴 구멍 하나 뚫어보고자 했던 노력들이 없었던 것도 아닌데. 숨이 턱턱 막히던 하루하루. 그 마지막 하루는 결국 <슬램덩크>였다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