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기의 책, 디오니소스 프로젝트
현대적인 교육을 받은 관찰자라면 병약한 어머니와 훌륭한 가문의 연륜을 되짚어보며 지성의 이상비대증(異常肥大症)을 점차 심각해지는 몰락의 증상이라고 이야기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다행스럽게도 이 마을에는 그러한 부류의 시민들이 살고 있지 않았다. 관료들이나 교사들 가운데에서 보다 젊고 약삭빠른 사람들만이 신문 사설을 통해 어렴풋하게나마 ‘현대적 인간’의 존재에 관해 알고 있을 뿐이었다. 이곳에서는 차라투스트라의 이야기를 모르더라도 교양 있는 척하면서 아무런 어려움 없이 살 수 있었다. ... - 헤르만 헤세, <수레바퀴 아래서>, p10, 민음사 -
다시 시작해 보는 디오니소스 프로젝트, ‘나름’ 2기. 어제 모임에서 나온 이야기. <어린 왕자>가 어떤 내용인지는 다 알아도, 실제로 그 책을 읽어본 사람은 또 그렇게 많지는 않잖아? ‘세기의 책’ 기획도 그런 취지다. 이탈로 칼비노의 표현을 빌리자면, ‘너무도 유명하지만 아무도 읽지 않는 책’들이랄까? 한 번 시리즈로 이어가보려고, 그러다 나중에는 저자 분들이 직접 뽑은 매뉴얼로 마무리해 볼까 생각 중.
헤세에 관한 책은 몇 권 읽었어도, 그래서 어떤 작품이 어떤 내용인지는 대충 알아도, 그의 소설은 <데미안> 밖에 안 읽어봤다. 고등학교 시절에 필독서 목록으로 권고되었던 것 같은 <수레바퀴 아래서>도 이제서야 읽어 보고 있다.
헤세의 시대에 독일은 전범의 나라이기도 했지만, 인문학과 교육시스템의 선진국이기도 했다. 조국에서 파쇼가 일어난 원인을 분석했던 당대 철학자들, 그 중에서도 아도르노는 이 온기 없는 지성의 계발을 지목하기도 한다. 독일의 교육엔 건강하지 못한 지성만 있을 뿐 사랑이 결여되어 있었다는 거지.
니체주의자이기도 했던 헤세, 차라투스트라의 질문에 대한 대답이 <데미안>에서의 아브락사스이기도 했으니까. 니체의 감성철학은 스탕달의 낭만주의에서 많은 영감을 받았다. 마침 헤세의 자전적 이야기는 <적과 흑>에서의 구조적 조건과 비슷하다. 신학자로서의 진로가 가장 출세하는 세속적 루트였던...
나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는 듯한, 그 조건을 타인들은 이렇게 살아가는구나 하며 넘겨보는 스토리텔링. 문학평론가 김현에 따르면, 이것이 문학을 읽게 하는 동력이다. 내겐 어떤 작품이 해당할까? 아무리 생각해 봐도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도, <슬램덩크>도 아닌 것 같다. 문학사적 당위로 읽은 것과 그냥 재미있었던 추억일 뿐.
내겐 그냥 음악이었던 것 같아. 내게서 반복된 영원회귀, 저 타는 노을, 붉은 노을처럼...
난 너를 사랑해. 이 세상은 너뿐이야.
소리쳐 부르지만, 저 대답 없는 노을만 붉게 타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