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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쓰는 편집장 Feb 08. 2022

<백년 동안의 고독> -가르시아 마르케스

박완서 작가의 말

  읽어야지 읽어야지 하면서도 못 읽었던 소설을, 편집하면서 그 대강을 접하고 있다. 한 집안의 100년에 대한 판타지적 대서사시인가 봐. 원고에 적힌 내용으로는, ‘고독을 굳이 외로움을 비교해 보자면, 고독은 긍정적, 자발적인 느낌이 강하고 외로움은 부정적, 소외감의 느낌으로 다가온다.’ 소설 속에서 ‘고독을 통해 행복을 느꼈다는 대목이 자주 등장한다.’


  설 연휴에 몇몇 저자 분들과 화가 분들에게 간략한 신년운세 서비스를... 이런 편집자가 어딨어. 원고로 파악한 소설의 대강을 사주팔자와 관련해 설명해 보자면... 저자 분들이나 화가 분들 중엔 돈 걱정은 안 해도 될 것 같은 오행 조합인 경우들이 있다. 그런데 그런 경우가 되레 정신적인 갈망으로 들끓는 때가 있어. 그렇다 보니 예민한 거지. 그렇다 보니 작은 영감도 놓치지 않고 글로 그림으로 표현할 수 있는 것일 테고...


  관계의 문제에 있어서도 뭔가 채워지지 않는 느낌을 받는 거야. 자기 결여에 맞는 영혼의 동반자를 만나기 힘드니까. 고흐가 칼빵을 맞으면서까지 고갱을 끌어안았던 이유가 그렇기도 하잖아. 다시는 만날 수 없을 것 같은 솔메이트였기에...


  홀로여서가 아니라, 관계에 서툴러가 아니라, 채워지지 않아서 외로운 거라서... 태생적으로 남들보다 더 큰 외로움을 느끼는 조건이다 보니, 때로 관계에 더 활발하기도 하지만, 끝내 채워지지 않으니까. 그 결여가 글과 그림으로 옮아가는 것. 박완서 작가가 그런 이야기를 하잖아. 글 쓰는 작업은 외로운 운명을 각오하는 것이라고... 이 말의 의미는 환경적 조건과 자아적 조건 둘 다에 관해서겠지.


  쇼펜하우어 철학은 인생의 영점을 다시 잡은 것으로 시작한다. ‘행복’을 영점으로 두니까, 남들처럼, 남들보다 행복해 보여야 하는 집착에 시달리는 거지. 행복하지 않음이 불행과 같은 건 아니잖아. 하여 영점을 고독으로 잡아야 한다는 거. 이건 내 주장이 아니라, 그럴 수밖에 없겠구나 싶은 사주들이 더러 있더라구. 라캉의 정신분석으로 설명하자면, '대상 a'에 관한 것. 극간 그 자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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