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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쓰는 편집장 Feb 09. 2022

<호밀밭의 파수꾼> -로버트 번스의 시

Comin’ Thro’ the rye

  그렇지만 피비가 옳았다. ‘호밀밭을 걸어오는 누군가와 만난다면’이 맞다. 사실 난 그 시를 잘 모르고 있었다.

  ...

  ‘나는 늘 넓은 호밀밭에서 꼬마들이 재미있게 놀고 있는 모습을 상상하곤 했어. 어린애들만 수천 명이 있을 뿐 주위에 어른이라고는 나밖에 없는 거야. 그리고 난 아득한 절벽 옆에 서 있어. 내가 할 일은 아이들이 절벽으로 떨어질 것 같으면, 재빨리 붙잡아주는 거야. 애들이란 앞뒤 생각 없이 마구 달리는 법이니까 말이야. 그럴 때 어딘가에서 내가 나타나서는 꼬마가 떨어지지 않도록 붙잡아주는 거지. 온종일 그 일만 하는 거야. 말하자면 호밀밭의 파수꾼이 되고 싶다고나 할까.'


  저자 분이 인용한, 민음사 판 <호밀밭의 파수꾼> P229~230. 블로그 이름이 ‘호밀밭을 판 술꾼’일 정도로, 내 인생에서는 조금 특별한 기억이다. 꽤 늦은 나이에 책에 취미를 갖게 된 경우라, ‘죽기 전에 읽어야 할’ 매뉴얼을 닥치는 대로 읽었던 시기가 있었다. 뭘 읽어야 할지에 대한 내 스스로의 판단을 믿지 못 했으니까, 그냥 제목을 얼핏 들어본 고전부터 무작정 읽기 시작한 거야. 그 다짐 이후 첫빠로 집어든 책이었다.


  읽은지 오래됐기도 했고, 읽은 책의 내용을 잘 기억하는 편은 아니라서, 편집을 하면서 새삼, 그리고 새록새록... 시에서 따온 제목이었구나. 18세기의 영국 시인 로버트 번스 (Robert Burns)의 「Comin’ Thro’ the rye (호밀밭을 걸어오는 누군가와 만난다면)」.


  만세력을 돌려서 자기 사주에 ‘상관’이라는 인자가 많다면, 이 소설에 해당하는 삶일 거야. ‘편관’, ‘정관’이란 인자는, 라캉의 정신분석에서는 상징계적 이데올로기에 해당한다. 상관은 그 부당함을 깨뜨리려는 성향이야. ‘편인’이나 ‘정인’의 인자가 함께 들어 있다면 <죽은 시인의 사회>에서의 ‘캡틴’과 같은, 진보적이고 진취적인 성격일 수 있다. 그러나 ‘편인’이나 ‘정인’의 인자가 없다면, 자기 소신에 기댄, 다소 이기적인 성향일 수도 있어. 소설은 그런 고민을 다루고 있기도 하다. 내가 과연 맞는 것일까, 내가 틀린 건 아닐까, 하는... 


  그 사회의 이데올로기에 순응하는 게 속 편할 때가 있잖아. 저항의 정신은 대개 맨땅의 헤딩하는 방식으로 성장할 수밖에 없거나, 나와 가치가 통하는 진정한 솔메이트를 만나긴 힘드니까. 진보와 진취를 말하면서도, 자기 필요할 땐 그 사회의 이데올로기로 돌아서는 이들이 얼마나 많아.


  그런 면에서 나도 떳떳하진 않아. 내 사주에 있는 ‘편관’과 ‘정관’이 그거였을까? 겉으로 보여지고 싶은 모습과 달리, 내심 철밥통의 굴레에서 벗어나지 못했었으니까. 그런데 정말 팔자대로 가는 것인지, 서른 중반부터는 내 안에 있는 ‘상관’과 ‘편인’의 인자를 꺼내어 사용할 시기. 이 호밀밭에서... ‘편집’을 하고 있다.


  고전을 MBTI로 해석하는 원고는 삽화 작업에 들어갔는데, 아울러 기획 중이었던 문학을 사주팔자로 풀어보는 원고, 이런 분위기라면, 아무래도 내가 할 것 같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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