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정의 문 앞에서
등장인물의 이름을 이니셜로 받는 소설들이 있잖아. 한 동안 이런 형식이 유행이기도 했단다. 문학사에서 가장 유명한 이니셜은 카프카의 K가 아닐까? 철학 쪽에서도 이 카프카의 K의 활용은 거의 이선희의 'J'급.
주인공 K가 사법부에 소속된 신부에게서 소송 진행의 상황과 함께 들은 어떤 이야기. 한 사나이가 법정의 문 안으로 들어오려 하자, 법정의 문지기가 지금은 들어갈 수 없다며 그를 가로막는다. 만일 그 문을 들어선다 해도, 그 안에도 곳곳에 문지기가 서 있고, 안으로 들어갈수록 권력은 더욱 커질 뿐이라고 말하다. 문 앞에서 하염없이 기다리던 남자는 그 동안 남자는 문지기에게 간곡한 부탁과 함께 뇌물로 건넨다. 문지기는 "당신이 무시당했다고 생각하지 않도록 일단 받아두기로 하지." 라며 그 돈을 받아챙긴다. 기나긴 기다림 끝에 남자의 생이 다해갈 즈음, "많은 사람들이 법을 구하고 있습니다. 그런데도 그 오랜 세월을 두고 나 외에는 누구 한 사람 들어가려고 애쓰는 사람이 없었던 것은 무슨 까닭입니까?"라며 문지기에게 묻는다. "이건 오로지 자네만을 위한 입구이므로 다른 사람이 들어갈 수 없는 게 당연하지. 자, 나도 문을 닫고 물러가야겠군." 라며 문지기는 대답한다.
정확한 내용이 기억나지 않아서, 위키백과에 정리된 내용을 참조했다. 이 일화는 무슨 의미를 담고 있을까? 법이 평등하지 않다는 거지. 또한 푸코가 말하는 권력적 지식의 사례. 보통 사람들은 법에 대해 잘 모르니까, 어떤 조항들의 조합으로 개인을 옭아맬 수도 있다는 것. 반대로 어떤 조항들의 조합으로는 수혜를 누릴 수도 있다는 것. 그래서 부유층들은 대형 로펌의 에이스들을 여럿 고용하잖아. 반면 약자의 편에 서서 싸우는 인권변호사들이 있고...
물론 돈 필요하지. 많은 돈을 벌 수 있는 조건을 포기하고, 타인을 위한 삶을 선택한 신념이 그래서 더 멋진 것일 테고... 우리는 드라마 속의 주인공이 행하는 정의감에 다들 감동하잖아. 그런데 실생활에서 우리가 어떤 캐릭터일지를 돌아본다면, 주인공을 자처할 수 있는 사람들이 얼마나 될까? 약자를 대하는 태도를 보라잖아. 그래도 가끔씩 세상이 공평해서 드라마 같은 결론을 향해가기도 하니까.
편집하다가 문득 떠오른 어떤 이야기. 대학교 3학년 때, 아버지가 하시던 사업이 부도가 나면서 병마까지 찾아들었다. 아버지가 암투병 끝에 돌아가신 이후로 몇 개의 소송이 진행되었는데, 아버지도 어떻게든 정상화를 해보려고 했던 노력으로 여기저기서 빚을 지신 거야. 어쩔 수 없이 파산신청을 하면서도 도의적으로 갚아야 할 돈은 다 갚았다. 그런데 이럴 때 더 치졸하게 구는 측근들이 있잖아. 그게 소송으로 이어졌던 것.
아버지가 돌아가셨으니, 대신 엄마가 몇 번 법원에 출두했는데, 아무래도 진술이란 게 아직 돈을 갚지 못한 변명일 수밖에 없지. 그런데 판사가 쓸데없는 말 좀 하지 말고, 묻지 않은 말에는 대답하지 말라고 호통을 치더란다. 당시에는 판사라는 권력으로 서민을 무시하는 듯한 그 분위기에 기분이 나빴는데, 재판이 끝난 후에 판사에게 인사를 드리러 갔더니 그런 말을 하더래. 거기서 안 해도 될 말을 하면 아주머니가 불리해질 것 같아서, 자신도 답답해서 그렇게 호통을 쳤다고... 세상엔 이런 법조인도 있다. 반면 저런 친인척도 있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