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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쓰는 편집장 May 10. 2022

사르트르, <존재와 무> - 구부러진 못, 과거의 작용

별자리의 변증법

... 그러나 그것만으로 우리는 이 짜임과 이 상호침투의 이유를 밝힌 것은 아니다. 과거는 ‘재생할’ 수 있고, 우리를 따라다닐 수 있다는 것. 요컨대 ‘우리를 위해서’ 존재할 수 있다는 것을 설명한 것은 아니다. - <존재와 무>, 동서문화사, 정소성 역, p209


... 슈발리에는 이렇게 말했다. “이 두 개의 못 가운데 하나는 방금 만들어진 것이어서 아직 쓴 적이 없다. 다른 하나는 한 번 구부러진 것을 다시 망치로 두드려서 바로잡은 못이다. 이 둘은 겉으로 보기에는 완전히 똑같은 것이다. 그러나 처음의 일격으로 하나는 판자 속에 똑바로 박히지만 다른 못은 또다시 구부러질 것이다. 이것이 과거의 작용이다.” - p215


  뭔가를 생각해보게 하는, 참 기가 막힌 비유지. 시간의 철학자하면 베르그송, 시간의 문인하면 프루스트. 베르그송이 프루스트의 사촌 매형인지 그렇다. 서로 영향을 주고받은 친척 간이었을 수도... 사르트르는 두 사람 모두를 끌어온다. 과거에 벌이진 사건 그 자체로는 ‘즉자’의 성질이라는 거야. 그런데 그 과거를 기억하는 일 자체가 이미, 그간 지나온 시간들의 영향을 받는 거잖아. 그러니 그 과거가 현재일 때의 즉자로 기억되는 게 아니다. 이미 지금을 스치고 있는 현재적 현재의 상황까지 투영된 대자적 성질이라는 것.


  ‘대자’란 어떤 식으로는 의미화가 된 상태를 말한다. ‘의미화’라는 건 결국 현재에 영향을 미치고 있는 모든 시간을 매개하고 있는 거니까. 그런 의미에서의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그리고 그 독일어 번역자인 발터 벤야민의 역사테제이기도 하다. 과거는 그냥 과거로 갇혀 있는 게 아니라, 부단히 현재에 영향을 미치는 그 또한 현재적 속성이라는 것. 벤야민의 키워드 중에 변증법적 이미지, 혹은 정지상태의 변증법이란 게 있는데, ‘별자리의 변증법’이라고도 한다. 별자리는 서로 멀리 떨어진 다른 시간대의 별빛들이 모여 ‘현재’로 보여지는 거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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