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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쓰는 편집장 Aug 19. 2022

<헤어질 결심> - '마침내' 사랑하고 붕괴되고...

내가 그렇게 나쁩니까?

  “당신이 사랑한다고 말할 때 당신의 사랑이 끝났고, 당신의 사랑이 끝났을 때 내 사랑이 시작됐다.”


  핸드폰에 녹음된 대화 중에 ‘사랑한다’는 말은 없었잖아. 탕웨이의 공상이었을까? 사랑이란 단어가 없어도, 이미 사랑을 속삭이고 있었던 말들임에도, 박해일은 내가 언제 그런 말을 했는가를 되묻는다. 그리고 녹음된 자신의 말을 반복해서 듣는다. 왜? ‘증거’가 될 만한 사실이 있는지 확인하고자?


  박용우가 그것을 빌미로 삼았다는 건, 사랑이란 단어가 들어 있지 않아도, 제3자의 귀에도 사랑의 말들이었다는 ‘증거’. 또한 탕웨이는 그 ‘사랑’이 들어 있지 않은 사랑의 말들로부터 박해일을 지키고자 했던 거고...

   박해일의 의심도 결국엔 사랑의 증거. 그녀가 정말로 자신을 사랑하는 것인가, 그저 자신을 모면의 도구로밖에 생각하지 않았던 걸까? 그로 인한 ‘붕괴’ 속에서 그녀가 살인자이어야 하는 당위의 전제로부터 뻗어나가는 의심. 그러나 한편으로는 그 전제 안에서, 벼랑 아래로 밀쳐져도 상관없다는 듯 그녀의 손에 자신을 내맡기기도... 의심은 하지만, 속아도 상관없는 것. ‘사랑’이란 단어가 없었어도... 


  왜 그런 사람들과 결혼을 했느냐는 박해일의 질문, 자신이 사랑하는 사람들과는 인연이 되지 않는다는 탕웨이의 대답. 그 ‘증거’로서의, 또한 <헤어질 결심>의 원인으로서의 박해일. 


  사랑에 관한 소설를 읽고, 영화을 감상하고, 사랑에 관한 아름다운 말들을 기억하면서도, 정작 사랑 앞에서는 못 나게 굴 때가 있지. 때로 치졸하고 비겁할 정도로... 그 사람을 의심해서가 아니라, 용기가 없어서도 아니라, 상황이란 게 그렇게 흘러갈 때도 있고... 진심을 비껴가는 모진 말과 행동으로 서로를 붕괴시키기도... 마크 트웨인이 그랬다지. 허구는 철저히 논리적이어야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고... 그럼에도 ‘마침내’ 사랑하고, 붕괴되고, 후회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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