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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쓰는 편집장 Aug 19. 2022

<헤어질 결심> 마지막 장면

푸코, <말과 사물>, 마지막 문장

  이 영화가 그렇게 인상적이지는 않았거든. 그래도 계속 머릿속에 맴도는 이유는 순전히 탕웨이 때문에... 아직은 서툰 한국말이 수줍은 듯 살포시 웃다가, 다시 눈치를 보는 듯 긴장한 표정으로 돌아오는 연기는 탕웨이밖에 못할 것 같은... 연기지만, 삶의 어느 순간에 한 번쯤은 꺼내보았을 표정이니 연기도 되는 거겠지.


  박해일 입장에서는 저 표정이 미치는 거지. 저 진실 된 표정이 자신에 대한 기만이었을 수도 있다는 사실에... ‘의심’을 업으로 하는 형사로서의 프라이드, 그것이 붕괴되었다는 건, 그 의심을 거둔 순수함으로 그 거짓의 가능성을 대했던 배려 때문에... 

  “내가 그렇게 만만합니까?”

  약이 오른다기 보단, 슬픈 거지.

  “내가 그렇게 나쁩니까?”

  당신을 사랑하게 될지 어찌 알았게나, 당신에 대한 사랑이 이런 식으로 미끄러질지 어찌 알았겠나, 내 진심을 그렇게 삐딱하게 받아들이면 나는 정말 어쩌란 말인가, 탕웨이의 질문은 그런 대답이기도 했겠지.

  마지막 장면은... 사랑의 말들이 담긴 핸드폰을 바다에 던지는 대신, 그를 사랑했던 저 자신을 바다에 던지는 상징성은 알겠는데, 세련된 표현 같지는 않다. 양동이로 모래 파는 장면도... 하긴 탕웨이가 삽질을 해도 이상한 거겠지만... 뭔가 쓸 말이 없었는데, 푸코가 <말과 사물>에 적은 마지막 문장이 문득 떠올라서...


... 지금으로선 형태가 무엇일지도, 무엇을 약속하는지도 알지 못하는 어떤 사건에 의해 그 배치가 흔들리게 된다면, 장담할 수 있건데 인간은 바닷가 모래사장에 그려놓은 얼굴처럼 사라지게 될 것이다.


  여기서 ‘인간’이란 시대마다 달라지는 의미 범주에 관한 것. 오래 전 유럽인에게 흑인 노예는 아직 인류가 아니었던 것처럼... 사랑도 그렇지. 밀물처럼 밀려왔다가도, 썰물처럼 빠져나가는... 그리고 모래사장에 그려놓은 모든 것들을 지워버리는... 마치 거기에 아무것도 없었던 듯이... 


  분명 같은 사람인데, 시간에 따라 의미의 범주가 달라지니까. 사랑하다가, 의심하다가, 미워하다가, 그리워하다가... 나중에는 무언가 적혀 있던 모래사장에 대한 기억이, 정말 있었던 일들에 대한 기억인지조차 확신할 수 없고... 탕웨이의 아이스크림이, 바닷물에 씻기듯 녹아내리는 복선인가 싶기도 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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