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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쓰는 편집장 Nov 11. 2022

영화 <업사이드 다운> - 니체와 중력

아비투스

  상부와 하부, 어느 곳에서 살고 있느냐에 따라 몸에 가해지는 중력의 방향이 서로 다르다. 각 지역에서 생성되고 성장하는 물질들도 서로 다른 중력의 법칙을 따른다. 


  하부 지역에는 ‘검은 비’가 내린다. 하부에서 생산된 석유는 부유 계층이 살고 있는 상부에서 사용을 하고, 그 매연으로 만들어진 구름 속의 유해성분은 고스란히 하부로 떨어진다. 그래서 하부에는 늘 ‘검은 비’가 내리고, 그 풍경은 늘 짙고 어둡다.

  상부에 사는 여자가 하부에 사는 남자에게, 상부에서 재배한 석류를 건네는 장면. 남자가 석류를 한 입 베어 물자, 과즙이 바닥으로 떨어지는 것이 아니라 위로 솟는다. 먹는 것의 중력 차이, 체내에 흐르는 시간의 중력조차 다르다. 즉 ‘아비투스(Habitus)’의 차이다. 


  상부는 하부를 철저히 소외시킴으로써, 자신들의 닫힌 질서를 유지한다. 상부로의 진출을 꾀하는 하부도 있지만, 대부분은 상부를 질시하며 자신들 나름대로의 하부질서를 긍정하는, 그 역시 닫힌 구조이다. 두 집단의 화해가 가능하지 않다. 각자의 중력 내에서 인정되는 각자의 가치들만을 긍정할 뿐이다.

  니체는 고착화된 가치 체계를 ‘중력’에 비유한다.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에 등장하는 난장이는, 중력에 의해 키가 작아진, 관성의 힘에 이끌려 살아가는 군상들에 관한 상징이다. 체내에 흐르는 시간, 그것은 사유를 체계에 붙들어 놓는 중력이기도 하다. 니체에게 ‘가벼움’이란, 질서의 명분, 그 무게에 지배받지 않는 자유로움을 의미한다.


  이 영화의 한 주제는, 사랑이란 서로의 중력 차를 극복하며 서로에게 도약하는 노마드라는 거겠지. 내 중력에 관한 이해를 바라고 변명을 늘어놓을 게 아니라... 머리에 피가 쏠리는 한이 있어도, 뒤집어 생각해 보라는 의미일 수도 있겠고... 


  이 영화에서 하늘은 위에 있는 게 아니라 중간에, 즉 차이의 ‘사이’에 있다. 니체에게 있어 하늘이 지니는 상징성, 그야말로 하늘처럼 사랑하는 것. 중력보다 강한 끌림, 사랑하는 사람들만이 향유할 수 있는 자유. 흘러간 옛 노래의 가사를 빌리자면, ‘너를 품으려 내가 날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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