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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쓰는 편집장 Nov 24. 2022

자크 라캉, <에크리> - 정신분석, 비체계화의 법칙

평균의 함정

... 다른 한편으로 이 과학의 실제적 성공들은 이 과학에 대중의 눈을 멀게 만드는 위엄을 부여해주었는데, 이것은 명증성이라는 현상과 관계가 없지 않았다. 이처럼 과학은 전리에 대한 열정의 궁극적 대상으로 사용되기에 좋은 입장에 있었다. 그리하여 과학은 평범한 사람들로 하여금 ‘과학주의’라고 불리는 새로운 우상 앞에 그리고 ‘식자들’로 하여금 영원한 현학적 태도 - 이것은 이들이 현실에 대해 파악할 수 있는 것을 훼손한다. 이들은 자신들의 진리가 자신들의 탑의 벽들과 얼마나 많이 관련되어 있는지를 모르기 때문이다 - 앞에 무릎을 꿇도록 만들었다. 바로 그것이 관념연합 심리학자들이 행하고 있는 훼손인데, 이들을 알게 되는 행위, 즉 과학자들로서 자기 활동에만 관심이 있기 때문이다. ... - 자크 라캉, <에크리>, 새물결출판사, p99 -


‘정신분석적 경험’이라고 부를 수 있는 것은 이런 식으로 구성된다. 그것의 최초의 조건은 ‘빠뜨리지 않는다’는 법칙으로 정식화될 수 있다. 이것은 ‘자명하게 이해되는’ 모든 것, 일상적이고 평범한 것을 통상 주목할 만한 것에게만 주어지는 흥미로운 수준으로 끌어올린다. 하지만 이것은 두 번째 조건, 즉 비체계화의 법칙이 없다면 불완전하다. .... - 같은 책, p100 -


  정신분석이 의학이냐 철학이냐를 묻는 사람들이 있는데, 양자역학이 철학에서 길을 찾은 과학이라는 대답을 대신할 수 있을까? 철학이 인문학의 왕좌를 점하던 시절의 의학이었다는 시대 분위기도 감안해야 겠으나, 라캉 같은 경우는 그냥 철학자다. 


  밑줄 친 부분, 철학자들이 저런 표현들 많이 쓰잖아. 한 번에는 잘 캐치가 되지 않는, 다시 곱씹어봐야 이해되는 문장들. 이는 실증주의에 대한 비판이기도 하다. 과학조차도 전제 안에서의 결과라는 거야. 서점가의 자기계발서적 심리학이 특히 그렇잖아. 데이터의 평균치가 곧 누구나에게 적용될 수 있는 과학적 정보는 아니니까. 정신분석에서의 ‘자유연상’은 그런 심리학에서 ‘시민권조차 갖지 못한 것들’을 들여다보는, 보다 인문적인 방법이라는 거지. 


  그런데 문학을 좋아하고, 글도 문인처럼 쓰는 물리학자 분들이 얼마나 많아. 모든 영역이 그렇지만, 대개 인문적 보편성이 부족한 이들이 체계와 평균의 함정에 빠진다. 명리학조차도... 하여 무엇을 공부하는 것 이전에 어떻게 살아왔는가가 더 중요한 문제. 라캉처럼 살지 않으면, 라캉에게서 배웠다고 해도, 라캉과 같은 관점일 수는 없는 거지. 


  삶을 겉도는 지식만 늘어놓으며, 자신의 삶으로 가능하지 않은 것들을 글로만 떠들어 대는 이들도 넘쳐나고... 철학을 공부하는 이들 중에 은근히 말 안 통하는 경우가 많은 이유이기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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