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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쓰는 편집장 Nov 28. 2022

학생에서 선생으로 - 개학 첫날, 학생부의 일상

소설 <붉은 노을>

  아직 어둠이 다 가시지 않은 3월의 쌀쌀한 아침, 개학 첫날이지만 정문지도를 하기 위해 7시 30분까지는 출근을 해야 한다. 갓 입학한 신입생들은 초장부터 길을 들이지 않으면 안 된다는 학생부장의 강력한 의지이다. 하지만 보통 때도 7시 30분까지 와서 정문지도를 해야 하는 필요성을 종용한다. 출근 시간은 이래저래 7시 30분이다. 인권조례니 뭐니 해서 교육청에서는 정문지도를 하지 말라고 했다더만, 전시행정의 신봉자인 우리 부장놈은 전혀 아랑곳 하지 않는다.


  항상 같은 시각의 출근길에 마주치게 되는 낯익은 얼굴들, 방학동안 보지 못했던 얼굴들이 하나 둘 다시 내 곁을 스쳐간다. 물론 그들 입장에선 한 동안 보이지 않던 내가 다시 나타난 것이겠지만... 오랜만에 다시 스쳐 지나는 그 면면들이 그렇게 반갑지는 않다. 정말로 개학날이 되었다는 사실을 증명하는 것 이외에는 아무 것도 아닌 마주침이다. 학창시절의 등교길에는 같은 노선의 버스를 타고 다니는 예쁜 여학생을 오늘도 만날 수 있을까 하는 설레임이라도 있었건만, 이젠 빨리 버스에 올라타 잠깐이나마 창가에 기댄 불편한 잠을 청하고 싶은 생각뿐이다.

  오랜만에 들어선 학교 정문... 이라고 말하기에는, 요즘은 교사들에게 봄방학이 딱 일주일이다. 방학이라기보단 조금 긴 명절 연휴를 보내고 오는 느낌이다. 이래저래 개학이 전혀 반가운 상황일 리 없건만, 정문을 들어서자마자 전혀 반갑지 않은 인물이 반갑다며 인사를 건넨다.

  “하선생! 방학 잘 보내셨어?”

  오늘도 남들보다 먼저 출근해 교문을 지키고 있는 학생부장. 인사는 반갑게 하는 척 해도, 젊은 놈이 왜 이렇게도 게을러 먹어냐는 듯한 눈초리다. 지금 시각이 7시 20분인데도 저 지랄이다.


  두터운 외투로도 가려지지 않는 풍만한 뱃살, 중력을 이기지 못하고 흘러내리는 얼굴살, 목이 돌아가는 게 신기할 정도로 두터운 목살, 살들이 잡아당기는 것인지 늘 아래로 쳐져 있는 입고리. 가뜩이나 희고 성긴 머리카락을 뽀마드로 정성껏 빗어 넘겨, 머리에도 살만 가득해 보이는, 마치 어릴 적 반공 포스터에서 본 듯한 돼지 같은 김일성의 모습. 내 직속상관인 학생부장 이운기 되시겠다.


  이 학교 교장보다도 나이가 많은, 정년이 얼마 남지 않은 부장교사는, 자신의 처지에 대한 열등감인지는 몰라도 학생부장이란 타이틀에 상당한 집착을 보인다. 학생부실에서도 자신의 자리에 앉아있는 시간보단, 중앙에 놓여있는 소파에서 거드름을 피우는 시간이 더 많다. 명예욕은 강하지만 일을 잘 해낼만한 수완은 갖추지 못한, 그러면서도 부지런히 일을 만들어내는, 전형적으로 피곤한 상사스타일이다.


  물욕이 강해 초과근무수당에도 상당한 집착을 보이며, 분단위로 계산해 따지고 드는 통에 행정실에서도 피곤해 하는 교사상이다. 누가 수학 선생 아니랄까봐 계산에 그렇게 밝다. 그렇게 평생을 모아 서울 변두리에 작은 원룸건물을 소유하고 있으면서, 아직까지도 그 푼돈에 눈이 뒤집어진다. 학교의 근무시스템은 아침 정문지도 시간도 시간외근무로 쳐준다. 아침잠을 잃어버린 수전노에게는 겸사겸사 좋은 건수가 아닐 수 없다.

  “제가 할게요. 그만 들어가세요.”

  부장에게 들어가 쉴 것을 권하는 이유는 ‘그래도 젊은 것이 해야지’ 하는 마음이라기 보단 그냥 혼자 있는 게 더 편해서이다. 말 같지도 않은 말에 일일이 대꾸하는 것도 귀찮고, 내내 마주보며 서 있을 만큼 호감형의 얼굴도 아니다. 어차피 매일같이 교문을 통과하는 놈들이 그렇게 모난 복장으로 오는 경우는 별로 없다. 모난 놈들은 학생부교사들보다 일찍 오거나, 아예 정문지도 시간이 끝난 후에야 등교를 한다. 한 시간 동안 애들 인사나 받아주며 그냥 멍 때리고 있으면 된다. 그 멍 때림의 여유와 자유마저 저 부장 노인네에게 구속당하고 싶지 않다.


  정말로 개학인 건가? 혹 방학 중에 개학하는 꿈을 꾸고 있는 것은 아닐까? 나비의 꿈속을 살아가는 장자인지, 장자의 꿈속을 살아가는 나비인지에 대한 철학적 고민은, 이 순간엔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 눈앞에 너무도 생생하게 펼쳐지고 있는 ‘개학’이라는 상황에, 어지간히 개학이 싫었던 교사는 그저 죽고 싶은 심정이다.

  ‘아~! 학교 다니기 정말 싫다.’


  이렇게 한 학기가 시작되었다. 


- 민이언, 다반, 소설 <붉은 노을> 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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