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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쓰는 편집장 Nov 19. 2021

오르한 파묵의 글쓰기

그림 같은 소설

"소설 쓰기는 단어로 그림을 그리는 것이고, 소설 읽기는 다른 사람의 단어를 가지고 우리 머릿속에 그림을 그리는 것입니다." - 오르한 파묵 -


파묵은 22살 때까진 화가의 삶을 꿈꿨었단다. 어느 날 갑자기 소설을 써야겠다는 열망에 사로잡혔고, 7살 때부터 키워온 화가의 꿈을 접었다. 미친 짓이 아니냐며 만류하던 측근들은, 파묵이 자신을 기념할만한 한 권의 책을 욕망하는, 한때 불다가는 바람인 줄로만 알았단다. 다행히 오랜 세월동안 이어진 바람의 결을 타고 단어로 그림을 그리다가 노벨문학상까지 타버린, 미친 짓의 저력. 미쳐야 미친다고 했던가.


파묵은 이런 회화적 문장이 자신만의 독특한 방법론은 아니라는 사실을, 발자크, 위고, 프루스트, 톨스토이, 플로베르 등 여러 문인들의 선례로 부연한다. 또한 소설과 회화의 차이를 시간과 공간의 차이로 설명한다. 그림은 일정 공간에 멈춰 선 시간이다. 그에 비해 소설은 서사다. 한 폭의 그림이 어떤 순간을 보여준다면, 소설은 연달아 줄지어 있는 수천 개의 순간을 제시하는 서사라는 것.

들뢰즈 같은 철학자는 철학을 회화에 비유하기도 한다. 저마다의 화풍을 지녔다는 건, 저마다의 세계를 그리기 이전에, 저마다의 관점으로 보고 있다는 의미이기도 하니까. '글쓰기가 정신적이고 철학적인 행위가 아닌 어떤 기술로 취급'되고 있다며, 파묵이 오늘날 문예창작과의 교수방식을 넌지시 비판한 일을 들뢰즈의 견해와 관련지어 볼 수도 있겠다. 글쓰기는 기술의 문제이기 이전에 관점의 문제다.


문득 서상익 작가님이 떠올랐다. 이 분은 파묵과는 반대의 경우. 그의 그림을 처음 봤을 땐 철학에 관심이 많은 화가인 줄 알았는데, 철학에 대해서는 잘 모르신다고... 그 대신 문학동네에서 출간되는 한국 소설들의 컬렉터일 정도로 문학의 애독자. 그렇듯 문학적 직관과 철학적 직관과 예술적 직관은 상보적 관계라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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