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성주의
나에게 철학을 배울 것이 아니라, 철학하는 것을 배우라! - 칸트 -
합리론과 경험론의 종합이라고 일컬어지는 칸트의 주요 화두는 보편의 도덕 원리다. 그러나 그의 사이드 메뉴는, 어찌 보면 보편의 대척이라고 할 수 있는 ‘구성’의 주제이다. 똑같은 사건을 바라보는 각자의 인식이 서로 다르듯, 각자가 지닌 선험의 지력과 경험의 시간으로 가닿는 세계도 각자가 구성한 세계관으로 해석하는 결과이다.
물론 그 안에 보편적 요소들이 자리하고 있긴 하지만, 각자의 정체성은 그 보편의 요소들이 아닌 편차들의 성격들로 구분되는 것이 아니겠는가. 이 주제가 니체에게서 ‘관점’이 되는 것이고, 후설에게 가면 ‘지향성’의 담론이 되는 것이고, 하이데거에서는 <존재와 시간>이 되는 것이고… 철학사 역시 그런 편차들로 잇댄 시간이다. 역동적인 철학의 문법을 한 꺼풀 벗기고 나면, 실상 그 주제가 그렇게까지 다양하지도 않다. 궁극으로 가면, 우리 삶의 모습들이 또 그렇게까지 다채롭지는 않은 것처럼….
전공자 입장에서 서양철학에 대한 동양철학을 말해본다면, 저 역동의 방법론이 다소 부족한 것이다. 그런데 그것이 결핍의 성격이냐, 아니면 동양 특유의 여백으로 본질을 드러내고 있는 것이냐의 판단은, 공부하는 이들의 취향 차이일 뿐이다. 니체가 말했듯, 진리는 미적 취향인 터라, 서양화를 좋아하느냐 동양화를 좋아하느냐의 차이와 같은 맥락이다.
그 철학의 문장이 어떤 문체인가 보다는, 차라리 그 문장을 삶으로 살고 있는가의 문제. 이것이 칸트의 실천 철학이 지적하는 바이기도 하다. 하여 철학자들의 언어에 갇힐 것이 아니라 너 자신의 삶으로 밀고 나아가야 한다는 것. 데카르트의 ‘연장’과 스피노자의 ‘양태’ 개념을 아는 것이 우리가 살아가는 일상에 무슨 도움이 되겠는가? 그들이 그것을 말했다는 사실보다 중요한 건, 그들이 그것을 왜 말했는가에 대해 질문을 던져보는 일이 아닐까? 그리고 스스로 그 대답을 구성해보는 일, 그런 삶의 태도가 ‘철학하는 것’일 테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