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붉은 노을>
이 소설에서 시간의 매개물로 설정된 상징은 이문세와 빅뱅의 <붉은 노을>이다. 프루스트를 좋아한다는 작가는,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에 등장하는 마들렌 과자와 같은 속성으로 설명한다. 또한 기상 시간의 ‘알람’이라는, 꿈과 현실의 경계에 가로놓인 상징이기도 하다.
밤과 낮의 사이에서 아주 잠깐 동안 불타오르다 세상 끝으로 사그라드는, ‘여기’에서 바라보며 ‘저 너머’로 보내주어야 하는 오늘의 하늘. 그러나 하열아에게는 아주 오랜 시간이 지난 후에 되찾아야 할 어제의 기억인 동시에 다시 새로운 내일로 닿고자 하는 역설의 풍광이기도 하다. 낮을 포기하지 않고 타들어가는, 슬프도록 아름다운 노을빛 속에 오늘도 그가 서 있다. 그리고 그녀의 이름을 부르고 있다. 저 타는 노을, 붉은 노을처럼….
<시학>에서 아리스토텔레스는 역사가와 문인을, 문체의 차이가 아닌, 사건을 다루는 입장의 차이로 구분한다. 역사는 일어난 일들에 대해 이야기 하는 반면, 문학은 일어날 수 있는 일에 대해 이야기한다. 다시 현대철학자 들뢰즈의 표현으로 잇대자면, 역사란 ‘무엇이 일어났는가’에 대한 고증으로 뒤돌아보는 과거라면, 문학은 ‘무엇이 일어날 수 있었는가’에 대한 가정으로부터 시작되는 미래의 성격이다.
작가는 교직에서 겪었던 과거를, 그곳에서 일어나지 않았던 미래로 각색해보고 싶었다고 말한다. ‘하열아’라는 캐릭터는 그런 후회의 상징이다. 했어야 했지만, 알량한 현실의 문제에 치여 용기를 내지 못했던 결정적 순간에 대한 가책. 아주 오랜 시간이 지나서야 허구적 각색으로나마 다시 그 시점으로 돌아가, 그 가정의 미래 속에서 스스로를 구원해보고자 하는 열망의 방향성이 바로 ‘하여라!’라는 정언(定言)의 명령이다.
이 소설이 내 개인사에서는 이문세와 빅뱅을 잇는 세 번 째 <붉은 노을>의 의미이기도 하다. 이문세의 <붉은 노을>이 거리에 울려 퍼지던 시절로, 빅뱅의 <붉은 노을>이 연말 시상식에 울려 퍼지던 시절로 나를 데려가는…. 하열아가 5교시의 식곤증에 허덕이는 학생들에게 허하는 잠깐의 낮잠, 베고 자는 교과서에 침줄기를 쏟아내고 있던 학생들 중에는 어쩌면 우리들의 학창시절도 섞여 있진 않을까? 어느 누군가에게도 아주 잠깐이나마 그 시절 그 책상에서의 불편한 잠으로부터 깨어나게 하는, 회상의 온도로서의 <붉은 노을>이었으면 하는 바램으로…. - <작가의 말> 중 -
전혀 팔리지 않고 있는 편집장의 소설. 그 미련에 관한 셀프 홍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