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학자와 문인의 차이
"존재란 허망한 것이거나 영원한 것이다. 만일 도스토예프스키가 이 검토에서 만족했다면 그는 철학자가 되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는 이와 같은 정신의 유희가 인간의 삶 속에 가질 수 있는 결과들을 밝히며, 바로 이점에서 그는 예술가인 것이다."
카뮈의 키워드인 ‘부조리’는, 허망한 것을 알면서도 또 그것에 의지해 살아갈 수밖에 없는 모순의 문제이다. 그 부조리를 현실로 맞닥뜨리는 순간엔 너무도 처절하지만, 그것을 문학으로 다룰 땐 아름답기까지 하다. 철학사보단 문학사의 거점인 ‘이도류’이니, 철학보다 문학에 더 무게를 실어주는 듯한 어록의 뉘앙스도 당연한 것인지 모르겠다. 어쩌면 저런 관점이 시대의 라이벌로 묶이는 사르트르와의 차이이기도 할 테고….
개인적으로는 소설을 쓰고자 하는 욕망을 대신 해명해 주는 어록이기도 하다. 철학만 읽다보면 종종 회의감에 사로잡힐 때가 있다. 도대체 뭘 쓰고 있는 것인지, 도대체 뭘 써야 하는 것인지, 갈마드는 권태 속에서 허우적거리다 보면 문득 소설이 쓰고 싶어진다. 논리가 가득한 이야기보단, 꿈처럼 아득한 이야기를 써 내리고 싶은 욕망. 그런데 이도 시장 봐가면서 써야 하는 입장이다 보니, 대표님은 곤혹스러워 하는 이야기.
누구나가 예술가적 자아를 지니고 있다. 질기게 들러붙는 권태와 허무를 따돌릴 수 있는 승화방략이 누군가에게는 글쓰기일 테고…. 그런데 글에 치이고 사는 사람들에겐, 그도 일상과 이상의 성격으로 나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