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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쓰는 편집장 Nov 21. 2021

신카이 마코토 <언어의 정원>, 비 그림

비가 내리길래

   중학교 때 살던 집에는 조그만 뜰이 있었다. 그 뜰에 풀어놓고 키웠던, 친구에게서 분양받은 믹스견 두 마리. 제 집으로 들어가 비를 피하면서 빗줄기를 구경하는 녀석들을, 또 내가 구경을 하고... 그것이 마지막 기억인 듯하다. 최소한의 문학 감성으로 비를 대했던 때가... 그 이후의 모든 비에 따라붙는 의태는 ‘추적추적’이었다. 비는 ‘또’ 내리는 것이거나, ‘왜?’ 내리는지를 물어야 하는 것, 둘 중 하나였던 것 같다.


  그 모두가 자연의 한 표현일 뿐인데, 편애하는 계절이 있기도, 편애하는 날씨가 있기도, 편애하는 시절이 있기도 하다. 가을은 또 가을대로의 낭만이, 비 오는 날에는 또 비 오는 날대로의 차분함을 즐겨 봐도 되련만...


  강이 되고, 바다가 되고, 구름이 되고, 다시 비가 되어 내리고... 저들 중에는 내가 어릴 적에 살던 집으로 떨어지던 것들도 있을까? 그런 생각을 해본다. 하나의 빗방울에 잉크물을 들일 수 있다면, 언제고 다시 내 창가에 흐르는 빗줄기로 돌아올까? 비는 그 시절의 나를 기억하고 있을까?


  날이 좋아서, 날이 좋지 않아서, 날이 적당해서, 모든 날에 질기게 따라붙는 삶의 고민들. 부채장수와 우산장수의 어머니의 긍정도, 돌아서면 여전히 버티고 있는 빗줄기 앞에서, 내 종목이 부채도 우산도 아니었다는 또 한 번의 각성에 밀려나기 일쑤. 그래도 글쟁이의 삶이라고, 슬프면 슬픈 대로, 지치면 지친 대로 또 써 내려가는 한 페이지의 일기. 날이 좋아서, 날이 좋지 않아서, 날이 적당해서 써 내려가는 한 자락의 원고. 감성적인 그림 몇 장 사이에 이겨 넣는 그나마의 낭만. 그 주제가 멜멜랑꼴리일망정...


  그림은, 신카이 마코토, <언어의 정원>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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