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소라, <바람이 분다>
... 우리는 자신의 결정을 정당화시키는 온갖 이유를 들어 사랑을 죽이는 말을 할 때, 다시 만날 수 있는 가능성을 스스로 지워버리는 비열한 말을 할 때, 마치 자신이 대단한 권력의 소유자라도 된 듯 우월감을 느낀다. 아무리 최선의 결정이었다고 자신을 설득해도 사랑의 문이 쾅 닫히고 나면 그제야 자신이 얼마나 크게 잘못된 선택을 했는지 깨닫게 된다. ...
- 더글라스 케네디, <오후의 이자벨>
인문대중화 사업에 참여해 주신 화가 분들의 작품을 싣게 된 최새봄 작가님의 원고. 원래 저자 분들의 글은 최대한 안 건드리는 편인데, 이번에는 작가님과의 상의 하에 구성만을 다시 매만지고 있다. 그러던 중 눈에 들어온 구절. 이 소설과 관련한 작가님의 해설.
“ ... 어떤 선택을 하든, 결과와는 상관없이 이 순간이 두 사람에게 전혀 다르게 기억될 것이라는 사실이다. 연애를 하는 동안, 연인과 함께 보낸 시간 그 전부가, 하나의 기억이 아니라 두 개의 기억으로 쓰이고 있다는 사실은 얼마나 아이러니한가. 우리는 단둘이서만 하는 사랑을 두 가지 버전으로 기록하고 있다. 그리고 각자 자신의 기록만을 진실이라 믿는다.”
어쩌면 내가 준 상처에 대해 끝까지 말하지 않은 그 사람이 되레 마지막 예의를 다하고 있었는지 모르는데... 난 그걸 모르고서, 아무런 해명의 의지도 없어 보이는 그 사람에게, 나만 상처받았다고 생각하잖아. 어쩌면 이별의 말도 그 사람에게 짐을 떠넘긴 건지 몰라. 그 이별의 말에 주저앉은 나도, 솔직하니 내가 먼저 그 말을 꺼내고 싶었었거든. 그렇게 마치 이 역학관계에서 승자가 된 양 돌아서고 싶은 생각도 없진 않았는데, 그러기엔 아직 그 사람을 너무 사랑하고 있었어.
그렇게 사랑했는데, 왜 이 지경이 되었을까에 대한 부질없는 후회만이 차가운 바람 사이로 나뒹굴던 어느 날. 그 바람 뒤로 멀어져가는 그 사람의 뒷모습을 하염없이 바라보던 어떤 날.
이소라, <바람이 분다>. 나이가 들어 돌아보니 꽤나 사무치는 가사, ‘추억은 다르게 적힌다.’
바람이 분다.
텅 빈 공간으로 찾아들어
세상의 풍경으로 흩어지며
동요의 흔적으로 사라져간다.
잘못하고 실수하는 바람에
사랑하고 질투하는 바람에
내 많은 바람들이 나를 등지는 바람에 바람을 맞은 마음
그 허망과 미련 사이로
또 다시 바람이 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