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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로나의 자유경제 Jul 16. 2024

내게 스승 같은 악덕 임대인

자본주의의 스승

대략 15년 전부터 악덕 임대인들을 만났었습니다. 


1.

당시 제가 살던 곳은 작은 소평 평형 원룸이었습니다. 지금 기억으로 임대인은 법인이었습니다. 한 동 전부를 임대하고 있는 임대 회사였습니다. 전 이 사실을 전세 퇴거하면서 알았습니다. 


사회 초년생이라 돈이 없어 겨우 부모님께 손을 벌려 전세를 계약했던 기억이 납니다. 그냥 부동산을 믿고 계약했죠. 갓 사회에 진입한 초년생이 무슨 등기부 등본을 보나요ㅋㅋ


잘 살았습니다. 


중간에 전세금을 올리기도 했지만 많은 금액이 아니라서 충분히 올릴 수 있었습니다. 


문제는 퇴거할 때였습니다. 


집주인이 입주할 때와 비교해서 집 상태가 안 좋다고 견적을 내본다는 것입니다. 제가 볼 때는 똑같았는데 말이죠. 


저는 이미 이삿짐을 빼고 있는데 말입니다. 항의했지만 제 돈을 갖고 있는 사람에게 더 기분 나쁘게 말할 수가 없더라고요. 전 이사를 가야 하는 날인데 어쩔 수 없었습니다. 보증금에서 많은 금액을 수리비로 지불한다고 하고 나서야 돈을 돌려받을 수 있었습니다. 


굉장히 서럽더라고요. 그냥 갈취당한 것 같았습니다. 





2. 


그다음 집도 원룸이었습니다. 


이 집의 임대인은 개인이었는데 맨날 슬리퍼 신고 다니고 무슨 하와이안 셔츠 차림으로 다니더라고요. 원룸 건물을 몇 채 소유하고 있다고 부동산 사장님이 알려주셨습니다. 


지방에서 올라와 수도권에 정착을 하려다 보니 같은 돈으로 훨씬 작고 낡은 집을 얻을 수밖에 없더라고요. 

뭐 그래도 나름대로 거기서 잘 살았습니다. 


장마가 오면 바닥에 물이 차기도 했었고요, 

윗집에서 홍수가 난 건지 계단으로 물이 끊임없이 쏟아지기도 했습니다. 

바퀴벌레도 가끔 나왔고요, 

앞에는 시끄러운 카센터와 셀프 세차장 소리가 밤낮을 가리지 않고 들려왔습니다. 


그래도 저렴하게 거주를 해결하고 있기에 감사하게 살았습니다. 


문제는 역시 퇴거할 때였습니다. 


세입자가 구해지지 않는 것입니다. 이 보증금을 돌려받아야 제가 다음 집에 이사를 갈 수 있는데요. 잔금 날짜는 다가오는데 세입자가 구해지지 않습니다. 


정말 어쩔 도리가 없더라고요. 결국 새로 구한 집의 잔금날을 어찌어찌 미루었습니다. 그런데도 제 집의 세입자가 구해지지 않았습니다. 


미치겠더라고요. 임대인은 어쩔 수 없다는 식으로만 얘기를 하더라고요. 심적으로 힘들었습니다. 

하루는 집주인을 만나서 이 주일 안에 구해지지 않으면 진짜 경찰에 신고라도 할 것이라고 한바탕 난리를 쳤습니다. 


며칠 뒤, 이 집주인이 돈을 입금해 주었습니다. 


하... 진짜 나 어이가 없어서 정말 화가 나더라고요. 


융통할 수 있는 돈이 있었는데도 새 세입자가 구해질 때까지 시치미를 뚝 떼고 있었던 것입니다. 저는 새 집 잔금까지 미루었는데요. 


Image by Joe from Pixabay



3.


저는 그 이후로 절대 전세를 살지 않습니다.


전세 보증금은 언제든지 내가 원할 때 돌려받지 못할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하기 때문입니다. 


놀고 싶고 먹고 싶은 것 많은 20대 때

치킨 먹고 싶을 때 돈 아까워서 참아가며, 

밤에 술 약속 이후 택시비가 아까워 집까지 걸어가며, 

남들 휴가 때마다 다 가는 해외여행 가지 않았습니다.

그렇게 악착같이 그냥 적금, 예금으로 돈을 모았습니다. 이자가 들어와도 다시 저금했습니다. 


그렇게 모은 내 피 같은 돈을 돌려받지 못할 수도 있다는 생각이 퍼뜩 든 것입니다. 


그리고 우연히 보게 된 '디딤돌 내 집 마련 대출, 보금자리 대출'의 광고를 보고 저는 당시 70%의 대출을 이용해 3억짜리 집을 계약합니다. 제가 가진 돈은 싹싹 모아 8천만 원이었습니다.  그때는 빚내서 집 사라는 시기였습니다. 


20년 된 구축 아파트지만 어찌나 가슴 벅차던지요. 월세가 낀 아파트를 샀기 때문에 입주 때까지 1년이란 시간이 있었습니다. 그동안 또 죽어라 모았습니다. 통장에 찍혀가는 숫자들이 참 행복했습니다.




그래서 결국 방 한 칸과 화장실 정도만 내 집이지만 그렇게 집주인이 됐습니다. 

그리고 9년이 지난 지금도 마찬가지로 방 한 칸과 화장실 정도만 내 집이지만 서울 아파트의 집주인입니다.  

제가 집을 샀던 가장 큰 이유는 내 돈을 떼일 수도 있겠다는 큰 두려움 때문이었습니다.

은행 빚은 내 신용과 집을 담보로 빌리는 것이기 때문에 떼일 염려는 없지 않습니까? 1년에 은행 이자만큼만 오르면 손해 보는 건 아니지 않나? 내가 한 달에 저축하는 금액보다 원리금이 오히려 더 적은데? 원리금 내고도 저축할 수 있었습니다. 


그때와 지금과 소득에서 그렇게 큰 차이가 있을까요? 


뭐 물가 상승률만큼 올랐겠죠. 또 결혼해서 맞벌이를 하니 또 소득이 차이가 있을 수 있겠네요. 

하지만 첫 집과 지금 집의 가격 격차는 결코 제 소득과 결혼 등의 이유로는 설명이 되지 않습니다. 


결코 노동 소득 모아서 집 못 삽니다. 


집으로 더 좋은 집을 사는 것뿐입니다. 






4. 


저는 악덕 임대인 분들 덕분에 자본주의를 깨우쳤다고 확신합니다. 그들이 저의 스승이자 은인인 셈이죠. 올바른 자본주의의 길로 인도해 준 스승님이시죠. 


세상이 실전이고 언제든 내가 방심하면 쥐어 터질 수 있다는 것을 알게 해 주었으니까요. 


혹시 이웃 여러분 중에도 우리 집주인이 아주 착한 집주인이라고 생각하시는 분들이 있을 것입니다. 


그 착한 임대인이 여러분에게 장기적으로 보면 나쁜 사람입니다. 임차인인 여러분은 그 착한 임대인의 자산을 상승시키는 역할을 하고 계시는 거죠. 


오히려 악덕 임대인을 만나서 심하게 데인 분들은 내 집 마련을 고민하고 공부합니다. 서럽거든요. 무섭거든요. 

(의도적 전세 사기범은 그냥 범죄자입니다. 그놈들을 옹호하는 건 결코 아닙니다)


사전 청약, 공공 임대 주택, 장기 전세 주택 등등 이런 것도 의심하셔야 합니다. 


저런 것을 제공하는 정부도 착한 임대인이 아니겠습니까? 여러분에게 포근한 사회 안전망을 제공하여 주거 이외의 분야에서 돈을 소모하게 만들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지출 습관이 생기면 할부로 자동차 뽑고, 해외여행 턱턱 가주고 해도 돈이 모자라죠. 

그런데 어떻게 돈 모아서 내 집 마련하겠습니까?


그래서 임대 주택을 선택할 때는 정말 악착같이 여기서 딱 1년 안에 돈 모아서 나가겠다 하는 마음이어야 합니다.  안락하다고 느끼면 착한 임대인의 함정에 빠지는 것입니다. 


정부는 착한 임대인입니다. 

착한 임대인은 개인의 자산 획득 관점에서는 최악입니다. 


사지 멀쩡한 생산 가능 나이에 필요 이상의 경제적 혜택을 몰빵 해서 준다? 그냥 계속 그렇게 노동자로 살으라는 이야기입니다. 거기에 젖어들면 빠져나올 수 없거든요.



저의 임대인은 은행입니다. 달마다 원리금을 내라고 채찍질합니다. 그래서 본업에도 열심히 하고요, 다른 일도 열심히 하고 있습니다. 나쁜 임대인이죠. 


나쁜 임대인이지만 저는 좋습니다. 

제 자산과 돈을 제가 컨트롤하고 있거든요. 

남에게 기대지 않거든요.


여러분들의 임대인은 지금 

착한 임대인인가요? 나쁜 임대인인가요?





오늘은 옛이야기를 풀어봤습니다. 


다들 건강한 부자 됩시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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