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9. 새벽의 까이랑 수상시장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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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베트남의 메콩지역을 마지막으로 왔던 것은 지난 '09년 가을의 일이었다.
그때는 베트남 사업에 대한 내 입장은 내가 열심히 해도 안 해도 그만인 일이라는 것이었다.
그래서 큰 관심을 가지고 이 지역을 보지도 않았고, 내 관심은 그저 미국이나 일본과 같은 선진국에 있었다.
이렇게 이곳에 다시 찾아오게 된 것도 인연이긴 하지만 8년 전에 만났던 사람들에게 굳이 메일을 보내면서 마치 시효가 다 되어가는 사건을 해결하려는 한 형사처럼 굴며 미팅을 요청하는 것은 여간 새삼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었다.
개인적으로는 신뢰에 관한 문제이기도 하다.
시간의 공백은 크지만 그들 입장에선 다시 만나 얘기할만하겠다 싶었던지 다시 만나자는 제안을 받아들여줬다. 그래서 가슴을 쓸어내리며 다시 이곳에 오게 된 거다.
그런 전차로 정확히는 7년 여 전에 만났던 그들을 만나러 다시 메콩강 유역을 찾아왔다.
▼ 사실 호찌민에 도착해서 미팅을 할 요량이었지만 만나고자 한 모 기업의 대표께서 사정이 있으시다 하여 호찌민 남부의 '껀터 (Can Tho)'라는 도시로 가야만 했다.
도착하자마자 호찌민의 남부를 향해 차를 달렸고, 세월이 흘렀는지 그들의 길은 많이 좋아져 있었다.
저녁 무렵이 돼서야 목적지에 도착했고, 저녁을 먹고 나서는 여독을 풀겠다는 마음뿐이었는데 함께 온 베트남 현지 직원이 말한다.
"메콩강에 왔으면 까이랑 수상시장 (Cai rang floating market)을 봐야 하는데..."
그의 한마디는 아주 다양한 고통으로 여러모로 가지가지 산산조각이 나있는 나를 깨우는데 충분했다.
그의 말을 듣고는 바로 대답했다.
"아침에 수상 시장을 가보려면 몇 시에 일어나면 되는 겁니까?"
"아침 4시 45분… 피곤하거나 내키시지 않으면 다음에…"
"아니에요! 가고 싶네요! 그럼 아침에 일찍 일어나야 하니 빨리 잡시다."
그렇게 출장을 나설 때만 해도 전혀 상상하지 못했던 새벽의 '쁘띠 petit 여행'이 시작됐다.
무사히 새벽에 잠에서 깨서는 총총히 숙소를 나서서 배가 떠나는 선착장으로 간다.
배를 모는 선주는 담배를 빼어 물고는 긴 한숨을 쉬며 배를 움직이기 시작한다.
수상시장..
어떤 모습일까?
베니스 같을까?
아니면 서양 영화에 나오는 오밀조밀한?
많은 생각을 하며 메콩강 지류인 하우강 (Song Hau)을 가르는 작은 배에서 더운 나라의 새벽 공기를 맡는다.
▼ 시장 근처에 다가가니 벌써부터 나와있는 상인들의 자신들의 배 운전 솜씨를 뽐내며? 강 위를 활보하고 있었다.
한 상인은 귀신과도 같은 솜씨로 우리가 탄 배에 접근해서는 모닝커피는 어떻냐는 질문을 한다.
왠지 커피 한잔이 땡기던 참이어서 그래 그럼 마셔볼까? 하는 마음에 고개를 끄덕였다.
커피 상인은 다시 원피스에 나오는 해적과도 같이 귀신같은 솜씨로 자신의 배와 우리 배를 결박한다.
그러고는 삽시간에 두 잔의 커피를 만들어 한잔에 1만 동 (약 5백 원)씩 2만 동이라며 베트남식 아이스커피를 건넨다.
아주 맛있는 설탕 커피다.
조금 더 가니 이번에는 과일 배가 접근한다.
고개를 끄덕이지 않아서인지 매우 쿨하게 사진만 찍게 해주고는 자신이 가진 노로 우리 배를 밀면서 다른 배로 접근한다.
과일 배를 운전하는 이모님도 귀신같은 운전 솜씨를 자랑하긴 마찬가지였다.
▼ 시장에 가까이 갈수록 다양한 과일이나 야채를 실은 배들이 나타난다.
어떤 배에는 수박이 가득 실려 있고, 어떤 배에는 감자가 가득 실려 있다.
생필품을 실어 나르는 배도 눈에 띈다.
그들의 배에는 다른 배들에는 없는 다른 한 가지가 있었다.
긴 장대에 무언가를 꽂아둔 것을 볼 수 있었다.
어둠 속에서도 한 여인이 긴 장대를 준비하는 모습이 보인다.
약간은 불량한 자세로 배를 몰고 있는 드라이버에게 내가 물었다.
"저 장대에 꽂혀 있는 것들은 뭐죠?"
배를 몰던 아저씨가 말씀하신다.
"장대에는 각자의 배에서 파는 물건들을 꽂아 둡니다."
말하자면 장대를 이용해서 자신들의 배에서 파는 물건의 메뉴를 만드는 것이다.
배에서 거래를 하는 그들에게 그 배에서 뭘 파는지를 다른 사람에게 알리는데 이것보다 더 좋은 방법이 있을까 싶었다.
참 인간의 아이디어란 어떤 장면에서도 번뜩이는 것이 아닌가 싶었다.
▼ 새벽의 어스름한 밝기 때문에 정확히 보일지 모르겠지만 한 여인이 뱃머리에서 향을 피워놓고 간단한 제사를 지내고 있었다.
해가 뜨기 전이니 시각은 아침 6시 이전이었을 것이다.
긴 장대에 자신이 팔 물건을 꽂아 세우고 그녀는 이른 아침부터 그녀가 섬기는 신께 기도를 드리고 있었던 것이다.
더 자세히 말하자면 별로 깔끔하지 않은 배 위에서 야채나 과일을 팔면서 그 배에서 먹기도 자기도 하는 생활을 하면서도 그녀는 그녀의 감사함을 그녀의 방식으로 그녀의 신에게 말씀드리고 있었던 것이다.
어느새 이러한 그녀의 진지한 삶의 태도가 신께 올바로 전달되길 나도 모르게 기원하고 있는 내 모습을 발견하게 됐다.
▼ 어느덧 시장에는 많은 배들이 모여들어 긴 줄을 이루며 시장을 이루게 됐다.
이곳에 오는 물건을 팔러 오는 상인의 배와 물건을 사러 오는 상인 배들로 강 위에 멋지고 붐비는 시장이 하나 만들어지는 것이다.
흔히 유명한 집 앞에 사람이 모이는 것을 문전성시 (門前成市)라고 하는데 이런 경우라고 하면 움...
강상성시 (江上成市)라고 해야 하나? 강 위에 시장이 섰으니 말이다.
▼ 시장을 돌아다니는 사람들의 움직임은 매우 빠르기도 했고, 분주하기도 했다.
게다가 누구나 배를 타는 것에 매우 익숙한 몸놀림이었다.
삼국지로 비교하자면 오나라 사람들쯤 되려나? 손책과 손권이 보유하던 수군들의 몸놀림이라면 이랬을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한 아주머니는 매우 멋진 균형감각으로 배꼬리에 서서 배를 몬다.
아주 빠르지만 아주 균형적이다.
▼ 새벽 5시부터 일어나서 서둘러서인지 시장을 다 돌아보고 숙소로 돌아가기 시작했을 때 저 멀리 하늘이 빨갛게 물들기 시작했다.
이제 해가 떠오를 것이다.
난 여기 일을 하러 왔으니 오늘 아침의 이 쁘띠 여행은 잠시 아침의 조깅이라고 생각하고 얼른 돌아가 일을 시작해야겠다.
▼ 혹시 자신의 삶이 약간은 느릿하고, 약간은 불행하다는 생각이 드는 사람이 있거들랑
난 그에게 이곳 까이랑 수상시장에 와 볼 것을 권한다.
혹시 자기 자신의 팔자가
이 강 위에서
아이들을 데리고
큰돈을 벌기는 어려운
야채나 과일을 팔면서
그날 그날 번 돈으로
살아가면서도
새벽 5시가 되기도 전에는
꼭 일어나서 뱃머리에 서서
자신이 섬기는 신을 위해
기도하는
저 여인의 팔자보다 불행하다는 생각이 든다면
꼭 이곳에 와보길 바란다.
아마도 뺨따구 서너 대를 연달아 맞는 정도의 깨달음을 이곳 수상시장에서 느낄 수 있을 것이다.
큰 깨달음을 얻고 일을 하서 나선다.
By 켄 on 메콩 강 ('17년 3월 14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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