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시작이 언제였더라.
난 그 시, 공간, 함께였던 사람을 알고 있다. 기억하지는 못한다. 짐작하자면 그때는, 살아 있다 해도 의식은 없는 것과 같지 않았을까. 그저 작은 숨소리, 오물거리는 움직임, 이따금 다시는 입맛 모두가 이정의 단서였겠지. 이번 삶이라는 여정의 끝.
시간이 가면 그 날이 온다. 그리고 모두 그렇듯 한 가지 목표를 세운다. 버킷 리스트는 철저히 배제한 삶을 살겠다. 그저 일상을 살겠다. 일상(日常)이 곧 이상(異常)인 이상적(理想的)인 삶이 마지막에 가장 잘 어울리는 것 같다. 넘들 다 가지는 물건, 다 하는 생각, 다 가는 길은 유독 싫어했지만 사실 누구보다 열심히 그것을 갖고자, 하고자, 가고자 했다는 사실을 부정할 수 없다.
그래서 마지막엔 무엇을 갖고, 무엇을 하고, 어디를 갈지 정하지 않고 그저 눈길 닿는 곳을 보고, 손길 닿는 것을 쥐고, 발길 닿는 곳에 가고 싶다.
나에게, 그럴 힘이 아직 남아 있다면.
어느 글쓰기 클럽에서, <나의 마지막에 쓰는 글>이라는 과제에 제출한 짤막한 에세이다. 이 주제를 접하고 글의 방향을 정하는 데 오래 걸리지 않았다. 유서보단 목표를 적고 싶었다. 솔직히, 내일 당장 죽는다는 감정 이입이 잘 되지 않았다.
할 일이 많아서가 아니라, 아직 그럴 때가 아닌 것 같아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