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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케니스트리 Jun 26. 2020

거품처럼 아픔도

6:25 pm 라떼의 흔적

묘하게 깎인 절벽의 단층을 본 적이 있는가. 운이 좋다면 어느 희귀한 동물의 화석을 발견할 것이고 그게 아니더라도 세월과 함께 켜켜이 엉키고 쌓여 우리 눈에 더 이상 변화 없는 멈춘 시간들이 보일 것이다. 우리 눈에만 그렇지 사실 이 모든 것들은 아주 미묘하고 정밀하게,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움직이고 있었다. 미동(微動) 이란 그런 것인가.

그리고 지금 내 책상 한편에는 라떼가 한 잔 놓여 있다. 지나다 들른 반가운 손님이 놓아두고 간, 건조한 하루를 감사는 거품 속 실체가 아직 뜨거워 식기를 기다리다, 어느덧 퇴근 시간이 지나고 있다는 걸 깨닫는다. 서두르지 않기로 했다. 별 약속이 없는데 서둘러 나가는 것이 왠지 오늘 하루가 견딜 수 없을 정도로 피동적이었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것만 같기도 해서.

그렇게 시계를 보던 나의 눈은 라떼 거품 위 따스한 하트 모양 라떼 아트로, 그리고 키보드와 화면으로 옮겨가 퇴근 시간도 잊은 채 글을 적고 있다.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퇴근 시간이 한참 지난 오후 6시 25분이다. 눈을 돌려 잔을 보니 라떼 거품은 흔적(痕)만 남기고 그러했었다는 기억만을 전한다. 식은 지 한참이라 사라지고 만 라떼 거품이 마치 깎여나간 단층의 절벽 같기도, 또 문득 70여년 전 어느 사건이 남긴 각인 같기도 하다.


어떤 흔적은 누군가의 모습이고, 어떤 흔적은 누군가의 아픔이고. 씻어낼 수 있을까? 거품처럼, 아픔도.


손으로 그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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