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무 오래 방치되어 표면이 묽어진 새로 사 온 커피가 있다. 얼음이 녹은 물이 밀도가 높은 커피 위를 흐르고, 플라스틱 컵 표면엔 내가 방금 흘린 땀처럼 몽글몽글 결로가 맺혀 있다. 바삐 급한 일을 처리하느라 애쓴 건 나뿐이 아니었다. 식어가며 기다리던 커피도 힘들었던건 마찬가진가보다. 원래 그런 맛이었든 아니든, 음미할 여유 없이 목이 말라 다시 돌아와 앉은 테이블에서 몇 모금 들이켠다. 라떼가 좋은 것은, 너무 솔직하게 다가와 혀를 콕콕 찌르듯 씁쓸한 커피의 맛을 우유가 부드럽게 감싸 꽤 그럴듯한 포용의 조화로움을 주기 때문이다. 하지만 얼음이 많이 녹아 물이 되어 섞이고 있는 이 커피의 맛은, 우유와 커피가 서로 밀어내다 끌어안는 그런 감격의 조우가 아닌 그냥 지나버린 시간이 서로 함께하는 대부분의 이유인 듯 처음의 그 뜨거웠던 감정 다 식어 미지근해져 버린 연인의 어색한 표정이 담긴 사진 같아 아쉽다.
그래도 다시 맛을 보니, 또 이것은 이것 나름대로 아직은 시원한 위로가 될 수 있음을 깨닫는다. 여전히 서로에게 선물일 수 있는, 곁에 머문 연인이 함께 걷는 길 위에 드리워져 굳이 찾으려 애쓰지 않으면 보이지 않는 시간의 흔적처럼. 각인된 것은 원래 덧칠된 것보다 눈에 잘 띄지 않는다.
집중해서 무슨 일을 하다 잠시 한 숨 돌릴 때 늘 이렇다. 다 식어빠진 미지근한 커피 혹은 얼음이 녹아 물이 흥건해진 아이스 라떼가 그곳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