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케니스트리 Apr 05. 2021

여전히 선물인 존재

너무 오래 방치되어 표면이 묽어진 새로   커피가 있다. 얼음이 녹은 물이 밀도가 높은 커피 위를 흐르고, 플라스틱  표면엔 내가 방금 흘린 땀처럼 몽글몽글 결로가 맺혀 있다. 바삐 급한 일을 처리하느라 애쓴  나뿐이 아니었다. 식어가며 기다리커피도 힘들었던건 마찬가진가보다. 원래 그런 맛이었든 아니든, 음미할 여유 없이 목이 말라 다시 돌아와 앉은 테이블에서  모금 들이켠다. 라떼가 좋은 것은, 너무 솔직하게 다가와 혀를 콕콕 찌르듯 씁쓸한 커피의 맛을 우유가 부드럽게 감싸  그럴듯한 포용의 조화로움을 주기 때문이다. 하지만 얼음이 많이 녹아 물이 되어 섞이고 있는  커피의 맛은, 우유와 커피가 서로 밀어내다 끌어안는 그런 감격의 조우가 아닌 그냥 지나버린 시간이 서로 함께하는 대부분의 이유인  처음의  뜨거웠던 감정  식어 미지근해져 버린 연인의 어색한 표정이 담긴 사진 같아 아쉽다.


그래도 다시 맛을 보니, 또 이것은 이것 나름대로 아직은 시원한 위로가 될 수 있음을 깨닫는다. 여전히 서로에게 선물일 수 있는, 곁에 머문 연인이 함께 걷는 길 위에 드리워져 굳이 찾으려 애쓰지 않으면 보이지 않는 시간의 흔적처럼. 각인된 것은 원래 덧칠된 것보다 눈에 잘 띄지 않는다.


집중해서 무슨 일을 하다 잠시 한 숨 돌릴 때 늘 이렇다. 다 식어빠진 미지근한 커피 혹은 얼음이 녹아 물이 흥건해진 아이스 라떼가 그곳에 있다.

매거진의 이전글 고개를 돌려 바라볼 수 있는 곳에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