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케니스트리 Dec 29. 2021

타는 리듬

어느 여름 우중 라이딩의 기억

흔히 리듬은 탄다고 표현한다. 여러 음의 조화로운 리듬은 귀에 머물다 몸으로 번져 이리저리 나도 모르게 내 모든 감각을 내맡기게 되어 그렇게 말하는 것이 아닐까. 그보단 조금 더 자주적이고 주도적으로 타는 것, 그런 탈것 중 나의 연료를 태워 나아가는 자전거가 있다. 페달을 일정한 속도로 돌리며, 나도 모르게 몸이 위아래 혹은 좌 우로 메트로놈처럼 흔들거리며 그 추진을 얻어 앞으로 나아가는 자전거 위에선 마치 리듬을 타고 있다고 느끼는 것처럼 생각될 때가 있다. 이 표현에 공감하지 못한다면, 그저 자전거를 이동수단으로만 즐기고 있을 가능성이 크다.


날씨에 민감한 사람들이 있다. 낚시, 등산, 하이킹과 같은 야외 활동은 물론이고, 자전거로 여행하거나 운동하는 모든 이들도 그렇다. 그동안 다양한 스포츠를 경험했지만, 특히 자전거는 날씨에 큰 영향을 받는다고 느낀다. 자전거, 특히 도심이든 자연이든 포장된 길을 달리는 로드 자전거는 눈빗길에 매우 취약하다. 바퀴가 얇고, 속도가 빨라 바닥을 움켜쥘 만큼의 충분한 마찰력이 없다면 조금의 어긋남에도 쉽게 미끄러져 사고로 이어지기 쉽다. 최근 잠깐의 라이딩에서도 동행했던이의 낙차(넘어짐)를 보았다. 비나 눈, 혹은 그치고 난 직후의 젖은 길을 만난다면 조심해야 하지만, 그것도 요령이 필요하다. 지나치게 조심하다가 브레이크를 잘못 잡게 되면 바로 꽈당.



비가 싫은 이유는 또 있다. 강변에 주로 위치한 자전거 도로는 맑은 날엔 잘 정돈되어 보이는 길이라도 비가 오면 곳곳에 웅덩이가 생기고 토사가 넘쳐 지저분해지는 경우가 많다. 사랑은 음악을 타고 흐른다 했나.. 안타깝게도 아무리 낭만스러운 눈으로 바라보려고 해도 그리 비치지 않는 흙탕물은 바퀴를 타고 그대로 튀어올라 안장 위 둔부를 적신다. 흙탕물은 사방으로 튀며 자전거 곳곳을 적시고, 다리도 적시고, 신발 속으로 스며들어 찝찝함을 남긴다. 흙탕물이 마르면 흙이 남는다. 한참 빗길을 달리다 보면, 왠지 입안에도 흙이 버석거리는 느낌이다. 나중에 청소하고 빨래할 일이 걱정이다. 하지만 당장은, 안전하게 집으로 돌아가는 것이 우선이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지난여름 어느 새벽의 경험은 특별했다. 자전거를 좋아하는 사람들의 모임에서, 연일 계속인 비 소식에도 자전거를 타러 나가자고 한 것이다. 평소라면 결코 따라나서지 않았겠지만, 그들의 결기 혹은 열정이 궁금했다. 비 오는 날 라이딩을 안 해본 것은 아니지만, 대체로 예상치 않게 라이딩 중간에 비가 오는 상황이었지 일부러 비 소식에도 라이딩을 한 적은 기억에 없었다. 이른 아침, 모임이 시작되는 시간에 광나루 약속 장소에 갔다. 아직 비가 오지 않고 조금 흐린 하늘이었다. 이 정도 적당한 어둠과 습기가 목적지에 다닿을때 까지 유지되길 바랬다. 간절한 바람은 언제나 빗나가기 마련이다. 요즘 기상청 일기예보처럼.



사람이 대여섯 정도 모두 모이자 출발했다. 비는 아직이지만, 알 수 있었다. 무거운 공기와 어두운 하늘은 언제고 비를 흩뿌릴 준비가 끝난 듯 보였다. 느낌처럼, 어느새 부슬부슬 오기 시작한 비가 강변을 따라 팔당에서 양수로 넘어갈 동안 거세져 땅을 적시기 시작했다. 하지만 아직은 괜찮다, 고 여겼다. 다행히도 목적지인 양수에 도착할 때까지 빗줄기는 더 거세지진 않았지만, 가랑비에 옷 젖듯 바닥은 이미 흥건해 앞사람의 뒷바퀴를 타고 애기 오줌줄기 같은 빗방울이 튀어올라 나의 고글 위에 흩뿌려지고 있었다. 평소 하지 않던 각질 관리를 위한 수분 보충을 이런 곳에서 하게 될 줄이야. 산성비가 아니길 바랄 뿐이다.


한번 적셔진 몸과 슈즈, 자전거는 이후엔 크게 신경이 쓰이지 않는다. 무사히 가고, 돌아오는 것에만 집중한다. 앞으로 나아가기엔 무리가 없는 이 빗길에서의 라이딩엔, 안개 자욱한 조용한 숲길, 오직 우리들 바퀴가 습한 노면을 훑고 지나며 남기는 거슬리지 않는 소음과 물 튀는 소리, 그뿐이다. 자전거를 일정 거리 일정 속도로 타다 보면 스윽 스윽 같은 패턴의 박자가 무의식 중에 맞춰져 감각으로 전해지는 리듬을 경험할 수 있다. 오로지 달리는 한 가지 행위에만 집중하다 보니, 온통 감각은 리듬과 주위 환경을 향해 열린다. 리듬을 탄다는 것을, 의외의 빗길 라이딩에서 경험했다.



매거진의 이전글 멈추지 않고는 더 나아갈 수 없는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