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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케니스트리 Nov 13. 2021

멈추지 않고는 더 나아갈 수 없는

오로지 앞으로 향하고자 했던 바퀴를 멈춰 세운 건, 눈 위로 흐르는 땀방울도, 목까지 차오르는 숨도, 서서히 무거워지는 다리도 아닌, 갈대 사이 어릿하게 비치던 늦가을 아니 초겨울 어느 감빛 햇살이었다.




백신 후유증으로 무기력함에 이틀을 내내 누워 지내며, 제일 아쉬웠던 것은 창에 드리운 블라인드 사이사이 보이던 맑고 파란 하늘이었다. 내 주위 자전거를 타는 많은 이들은 내일 당장 세상이 망하기라도 할 것처럼, 생에 한 번뿐인 이 가을을 주말이면 교외로 우르르 나가 마음껏 즐기곤 하던데, 나는 연초에 시작했던, 어쩌면 잘못 끼워진 단추였을지 모를 어떤 일 때문에 평일도 주말도 맘 놓고 동행을 찾아 핸들을 잡지 못해 익숙해진 건 '솔라(혼자 라이딩)'였다.


하루를 쪼개자면 새벽 이른 시간이 제일 자전거를 타기 좋아 해가 일찍 뜨는 여름엔 '새라(새벽 라이딩)'도 했지만, 원체 아침잠이 많고 게으른 성정에 아직 밖은 어둡고 방 안 공기도 냉한 핑계로 요즘 그 시간엔 침대에서 몸을 일으켜 화장실에 가는 것도 큰 결심인데, 추위를 뚫고 페달을 밟아 산을 오른다는 것이 가당키나 할까. 실내에서 어쩌다 쳇바퀴만 돌리다 오늘 오랜만에 오후에 짬이 나 후다닥 옷을 입고 자전거에 올랐고, 운 좋게도 미사 강변의 떨어지기 전 해를 등지며 마음껏 달려볼 수 있었다.


물든 잎이 많이 떨어져 듬성듬성 빈 곳이 많은 나뭇가지라도 모아 두니 정취가 그럴 듯 해, 때 늦은 단풍놀이 신나게 하다 마주한 그 햇살이 너무 소중한 기억인 것은, 올해 가장 절정이던 단풍을 지인들의 사진으로만 구경해 아쉬워서가 아니라, 앞으로만 향하던 자전거 위에서 문득 옆을 돌아보니 펼쳐진 그 장면에 도저히 멈추지 않고는 더 나아갈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감 빛 햇살. 내리쬐지 않고 비스듬히, 또 갈대 사이사이로 '스며든다'는 표현이 더 잘 어울리던 늦가을, 아니 초겨울 어느 해질녘 풍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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