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케니스트리 Aug 30. 2020

아직 해가 있는 방향으로

한강.


평균 폭 1km 남짓의, 서울을 가로지르는 유일한 강. 태백산맥을 발원하여 총 400km가 넘는 본류의 길이지만, 서울 시민들에겐 하루에도 몇 번을 지나기도 하는 그저 익숙한 삶의 터전이다. 휴일 여가의 성지 한강변에는 수많은 공공시설이 조성되어 있으며, 강변북로와 올림픽대로가 감싸며 서울의 남과 북을 다리들이 연결한다. 그리고 이 곳엔, 자전거 도로와 산책로가 혈관처럼 이어져 타는 이와 걷는 이 모두를 동과 서로 통(通)하게 한다. 우리가 자는 동안에도 한강은 흐르고, 고요한 밤이 지나 어렴풋 동이 틀 무렵이면 부지런한 새들의 날갯짓을 시작으로 다시 서울 시민들의 숨이 모여 활기가 시작된다.



해가 좋은 날 한강으로 나가보면, 산책하는, 자전거를 타는, 풀밭에 돗자리를 깔고 피크닉을 즐기는 사람들이 있다. 나의 관심사 때문일까, 그중 유독 자전거를 타는 사람들이 눈에 들어온다. 눈에 띄는 밝은 색으로 한껏 감각을 뽐낸 패셔니 로드 라이더, 눈밑까지 올려 쓴 버프와 팔토시가 인상적인 산악 자전거 라이더, 서울시의 따릉이들, 앞선 아들이 염려스러운 아버지와 긴장한 듯 오른쪽으로 붙어 주행하는 어린아이까지. 근래 유래 없는 폭우가 50여 일이나 이어진 기록적 장마에, 잠시 흙빛으로 실룩대던 한강은 다시 원래의 푸른 낯빛으로 돌아오고, 온화한 얼굴이 되어 우산 아래 움츠렸던 사람들을 안장 위로 부른다.


동과 서로 비스듬히 뻗어있는 한강의 낮 두시 무렵은 해가 서쪽으로 조금 기울어진 중천이다. 한낮의 해는 아직 빛이 필요한 많은 이들을 비추고, 시간이 갈수록 서로 넘어가며 자줏빛 붉은색으로 한강을 물들인다. 어둡고, 밝고, 수줍은 진실함을 모두 담은 한강의 표정은 시시각각 변한다. 그게 언제든, 한강 변으로 나가 어디론가 향하다 보면, 그곳은 반드시 해가 있던 곳이거나, 아직 있는 곳이고, 그리운 사람이 머물던 곳이거나, 지나간 길일 것이다.




-

표지 사진: @euny

매거진의 이전글 4.45 부족한 400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