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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케니스트리 Dec 01. 2022

소통의 아로마

조직의 내부 커뮤니케이션을 메마르게 하는 외부 커뮤니케이션적 시각

해당 포스팅은 외부 커뮤니케이션을 가치 절하하려는 목적이 아니며, 각 분야에서 요구하는 전문성과 추구하는 목표가 서로 다를 수 있음을 전제로 창작된 스토리임을 밝힙니다.






"드라이하면서 달달한 와인 좀 추천해 주세요"


마치, '손들고 무릎 꿇고 서있어'라는 선생님의 지시를 받은 학생처럼 눈이 둥그레진 채로 잠깐 머뭇거리던 와인샵 점원은 진열대를 가로질러가 와인을 하나 집어 들며 말한다.


"이 와인이 어떠세요? 시트러스와 복숭아 향이 짙은데 당도는 낮아 확실히 좋아하실 겁니다"


와인에서 말하는 '드라이(dry)'하다는 표현은 '와인의 당도가 현저히 낮음'을 의미한다. 그러니 배치되는 두 개념이 공존하는 '드라이한테 달달한 와인'이라는 주문에 점원은 당혹했을 것이다. 하지만 눈치 빠른 점원은 이내 그 의도를 파악했다. 좋은 품질의 포도와 최적의 숙성 방식으로 특유의 달달한 과일향인 '프루티(fruty)한 아로마가 특징인 그런 와인을 권한다.


현실에서도 이런 와인 같은, 세련되면서도 달콤한 맛의 그런 조직문화가 존재 할까?




고민은 조직문화와 내부 커뮤니케이션이 분리되며 시작됐다. 내부 커뮤니케이션은 공통의 단어를 공유하는 대외 커뮤니케이션실 산하로 재편됐다. 실제 많은 기업에선 내부와 외부 커뮤니케이션을 하나의 조직에 배치한다. 리더십은 대체로 외부 커뮤니케이션이 갖는다. 물론 내부 커뮤니케이션도 내부 홍보 혹은 PR의 관점에서 다룰만한 여지가 있다. 하지만 그 관념이 내부 커뮤니케이션 전체의 미션을 지배할 경우 여러 상황에서 문제가 발생될 수 있다.


이런 원인들로부터. 



이분법적 도그마 


사내 커뮤니케이션 목적으로 두 가지 다른 활동을 기획해 보고한다고 가정해보자.  


사례 1. 사내 커뮤니케이션을 위해 웹진을 운영하고, 우리의 소통 문화를 외부에 홍보한다
사례 2. 사내 네트워킹 이벤트를 열어 직원간 소통의 기회를 부여한다


그러자 외부 커뮤니케이션을 담당하는 리더가 이렇게 말한다.


"그건 문화 활동이잖아요. 우리랑 크게 연관 없어 보이는데?" 


그렇다면 무엇이 진정한 사내 소통 업무인지 조언을 구하자 이렇게 주문한다. 


"사내 소통을 잘한다는 기업을 찾아 사례를 조사해봐요" 


연관 키워드로 검색하자 눈에 띈 구글 코리아의 사례에서 이런 활동을 발견한다.  


TGIF (Thanks Google It's Friday) - 매주 달라지는 테마별 직원 네트워킹과 소통의 장


이건 조직문화 활동일까, 사내 커뮤니케이션 활동일까? 


'... 분명 사내 소통을 키워드로 검색했는데, 어느새 조직문화 사례들을 접하고 있네?' 


개념으로는 몰라도 활동 사례에서 조직문화와 사내 소통은 명확한 분리가 어려웠다.


이로부터 한 이론이 떠올랐다. 과거 경영학 수업에서 배운 '기능적 사일로(Functional Silo)'라는 개념인데, 교차 협업 없이 각자의 직능만을 중시하는 조직 체계 혹은 관념으로 공통의 목표를 향한 협업과 발전을 가로막는 요소로 꼽힌다. 요즘 일컫는 성공적인 스타트업의 업무 문화들과 배치되는 개념이다. 기능적 사일로는 최근에 소개된 개념은 아니다. 1988년에 최초로 제시된 꽤 오래된 개념이다. 예나 지금이나, 기능적 사일로는 원활한 협업과 빠른 실행을 가로막으며 조직의 손실을 야기한다. 



방향성의 딜레마 


사내 커뮤니케이션 환경을 개선하고자 몇 주에 걸쳐 중간관리자들을 만나 의견을 들었다. 만족도 평가도 병행하고, 평가에 대한 이유도 물었다. 그리고 개선점에 대한 아이디어를 모았다. 다들 소통의 개선과 관련된, 또는 얼핏 들으면 그것과 크게 관련 없어 보이기도 하는 회사 운영 전반에 대한 의견을 가감 없이 토로했다. 어느 것 하나 버릴 것 없는, 고민해볼 만한 가치 있는 이야기들이라고 생각했다. 그중 공통적인 의견들을 모아 몇 가지 키워드로 묶고, 개선에 참여할 관련 있는 부서의 담당자들과 이야기를 나눴다. 제시된 아이디어들을 그룹화 하고, 우리가 당장 할 수 있는 일과 더 오랜 고민이 필요한 일로 나눴다. 그걸 할 일(to-do)의 목록으로 쪼갠 후 속한 커뮤니케이션 팀 리더에게 보고하자 이런 답이 돌아왔다.


"이런 건 크게 중요해 보이지 않아요. 사내 소통에 대한 타사 사례를 좀 더 찾아보고 방향성을 가지고 다시 이야기해요" 


기존 내부 커뮤니케이션 내용에 부정적 시각을 가지고 있던 매니저로 인해, '린(Lean)'하게 추진해 빠르게 테스트해볼 수 있는 일들은 잠시 갈 길을 잃었다. 그가 가진 부정적 시각은 다음 문제로부터 비롯됐다. 



오해 트라우마 


심지어 해당 직무가 본업이 아니었음에도 수년간 여러 조직에서 조직문화와 사내 커뮤니케이션을 겪었다. 조직문화와 사내 커뮤니케이션에 신경 쓰는 회사들은 '직원이 편하게 일할 수 있는 회사', '사람으로 인해 고통받지 않는 회사', '서로의 발전을 응원하고 지지하는 회사', '직원이 안정감을 느끼고 오래 일하고 싶어 하는 회사' 등, 내세우는 메시지는 달라도 결국 비슷한 가치를 지향하고 있었다. 잘 되었다고 평가받기도, 또는 '미흡하다'는 평가를 얻기도 했다. 성공이든 실패든, 늘 개선과 발전을 위해 참신한 아이디어를 찾는 것이 그 일을 하는 이들의 노력이었다. 


소통을 이야기 할때 '나아지고 있음'을 경험했던 조직은 대체로, 사내 커뮤니케이션의 영역에 아주 엄격한 잣대와 기준, 그리고 건조한 소통 방식을 추구하진 않는다. 오히려 공감, 창의, 자율, 관계와 같이, 유기적이고 포괄적인 개념으로 큰 틀을 잡고 여러 활동들을 기획하고 이어가는 경우가 많다. 구성원의 오해를 고려해 소통의 기회를 제한하거나 동료들의 문의에 지나치게 방어적으로 답하지도 않는다. 잘 정착된 사내 커뮤니케이션 환경에서 오해란, 문제를 발견하고 수정해 이해의 길로 나아갈 기회라고 여기기 때문이다.


반면 오해는 외부 커뮤니케이션 영역에서 가장 경계하는 결과다. 따라서 메시지는 간결하고 건조한 것을 추구한다. '미어캣의 촉과 올빼미의 눈으로 밤낮없이 회사를 탐색하는 기자들을 상대하자면, '조금의 틈'도 보여선 안된다'는 완벽주의가 회사에서 오랜 기간 외부 커뮤니케이션을 해오던 전문가들의 의식에 만연하다. 문제는, 그런 의식과 관념으로 내부를 바라볼 때 발생한다. 따뜻한 환대를 바라고 소통을 시도한 직원은 회사와 나 사이의 어색함과 괴리를 느끼고, 이는 낮아지는 소속감으로 연결될 수 있다.


메마른 오아시스에 더는 사람과 동물이 모이지 않는다 (photo by Olivier Mesnage in unsplash.com)


 

소통의 아로마 


'Internal Communication is Everyone's Work'
- Lauren Johnson, Slack


슬랙(Slack)은 관련 포스팅에서 '내부 커뮤니케이션은 모두의 일'이라 말한다. 그 목적인 신뢰가 가는, 투명한, 서로 존중하는 문화를 위해선 모든 구성원이 정보를 공유하고 서로 대화하는 소통의 방식이 꼭 필요하기 때문이라고. 문화를 바탕으로 최소한의 선으로 회사와 구성원, 구성원과 구성원간 소통의 질감과 형태를 스케치하는 사내 커뮤니케이션은 조직문화와 떨어뜨려 고민할 문제가 아니다. 건조하고 담백해야 하는 외부 PR의 관점으로 관리할 주제는 더더욱 아니다. 리더가 원하던, '사내 소통 좀 한다는 기업들의 사례'가 그렇게 전한다.


photo in unsplash.com



와인 테이스팅 용어로 닫힌(closed)의 뜻은 '와인의 향기가 잘 드러나지 않은' 이며, 공기와 만나 섞이며 열리는 과정을 통해 더 풍부한 아로마를 느낄 수 있다고 한다. 애초에 달콤할 문화를 닫힌 소통으로 드라이하게만 유지한다면, 그건 우리가 원하는 내부 커뮤니케이션의 모습은 아닐 것이다.


회사의 내부 커뮤니케이션은 와인이 공기와 만나 열리도록 도와주는 디켄터(decanter) 역할이어야 하지 않을까? 꽉 닫힌 밀랍병이 아닌.  



표지 사진 by Jozsef Hocza @unsplash 



※이 글은 원티드 인살롱 x 기고만장 에도 기고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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