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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케니스트리 Feb 09. 2023

병원 앞 이발소

생전 처음 '수술'이란걸 하게 됐다. 정확히 말하면, 아프지 않으면 할 일 없는, (하지 않으면 큰일이 날지도 모를) 치유를 위한 그런 수술을 살면서 처음 하게 됐다. 그럼에도 당장 어찌 되는 문제는 아니라 잘 관리만 하면서, 수술 날까지 한 두어 달을 기다려야 했다. 그리고 준비 과정에서 병원을 다니며, 부위가 머리 쪽이라 수술 당일엔 머리도 일부 깎아야 한다고 듣게 되었다. 최근 스타일에 조금 변화를 주고자 평소답지 않게 머리를 기르던 시기라 생각지도 못한 요구에 잠시 멈칫했다. 머리를 자른다는 것이, 수술을 한다는 사실에 비해 사실 그리 중요한 문제가 아닐 수 있다. 하지만 어떤 경우라도, 머리의 문제는 정말 아무렇지 않게 받아들여지지는 않는다는 것을 처음 알았다. 이리저리 마음이 복잡해지며 스스로 좀 웃기다는 생각도 들었다.


입원을 미리 한 것이 아니어서 수술 몇 시간 전 병원에 들러 준비를 해야 했다. 그 준비엔 물론 '머리 깎기'도 포함되어 있었다. 잠시의 대기 후 간호사가 머리를 깎고 오라고 한다. 병원 지하에 위치한 이발소에 가서 수술 부위를 이야기하면, 알아서 잘 잘라줄 것이라고. '올 것이 왔구나'하며 무거운 발걸음을 이발소로 옮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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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발소. 정말 이발소였다. 현대식 시설로 지어진 병원 지하에 왜 '헤어살롱'이 아닌 클래식한 감성의 '이발소'가 있는지는, 거길 들르고 나서야 납득이 갔다. 이발사 아저씨의 손은 빠르다. 그리고 부위를 깨끗하게 밀어 수월한 수술이 가능하게 하는 데에는, '헤어 디자이너'보단 면도날을 잘 다루는 이발사 아저씨가 더 적합하다. 


가운을 입었다는 점, 병원에서 일한다는 점, 같은 '사'로 끝나는 직업이라는 점 이외에 의사와 이발사는 닮은 점이 또 있다. 누군가가 건강과 일상을 되찾을 수 있도록, 의사는 메스(수술용 칼)를 들고, 이발사 아저씨는 면도날을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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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발소 문을 열고 들어가자 나이 지긋해 보이는 이발사 아저씨가 묻는다.


"어디 수술하세요?"


어디 어디 라고 답하자 고개를 살짝 끄덕이며 손가락으로 의자를 하나 가리킨다. 어느 세대의 유물처럼 보이지만 나름 이발에 최적화된 그런 이발소 의자였다. 자리에 앉자 목에 수건을 두르고, 수술 예정인 부위 주변의 머리카락을 싹둑싹둑 자르더니, 곧 ('전기 바리깡'이라 부르는) 전동 면도기로 위잉 위잉 가차 없이 쳐 나간다. 이어, 면도 거품을 바르더니 면도날을 능숙하게 이리저리 돌리며 사각사각 머리카락 자국도 보이지 않게 깎아 나간다. '머리는 또 자라게 마련이다' 라며 스스로 위안을 할 시간도 없을 만큼 금세 끝났다. 이발 시간은 1분도 채 걸리지 않았다.


"윗머리로 가리니 티도 안 나네. 수술 잘 받으시고 얼른 쾌차하세요"


그냥 기계를 거쳐가는 제조품처럼 스쳐 지나는 인연으로만 대해줬어도 충분했을 텐데, 그렇게 위로의 한마디를 들으니 어색하고 염려되는 마음이 조금이나마 진정되는 느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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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나 많은 이들을 겪었을까?

얼마나 많은 환자와, 그 가족들을 만났을까?

얼마나 많은, 그들의 걱정 비친 어두운 표정을 보았을까?

그리 밝지도, 넓지도 않은 병원 지하 이발소에서 이발사로 일하며, 딱 한 번 만날 가능성이 큰 고객을 위해 얼마나 많은, 수술실의 의사가 딱 원하는 만큼의 머리를 자르고, 깎고, 또 다듬었을까?


좋은 일로 들를 리 없는 이들의 온전치 못한 마음까지 어루만지던 병원 이발사 아저씨의 그 한마디는, 굶주림에 손에 쥐어진 적당한 쿠션감의 팥빵 같았다.


그렇게 머리 한 움큼 정도보단 조금 더 가벼워진 발걸음으로 수술 준비실로 향하며, 문득 '서비스'에 대해, 그 이전의 '관계'에 대해 생각이 들었다. 오래전 어느 매체에서 보았던, ‘세상에서 가장 맛없는 음식’을 파는 식당들과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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훈련소 앞 식당은 다 그런 것은 아니겠지만, 일부는 맛과 성의가 없기로 악명 높다. 매체는 안 그래도 심란한 젊은이들과 가족을 위로하기는커녕 턱없이 비싼 가격과 갈비가 드문 갈비탕으로 밥 한 끼라도 든든히 먹여 들여보내고자 들른 부모님과 아들들의 귀한 마지막 시간과 돈을 빼앗는다는 충격의 현장을 고발했다. 이런 사례는 관광지에도 많다. 숲과 계곡이 있고 차가 닿을 수 있는 관광지의 닭백숙집의 비 양심적 영업 행태도 소개된 적이 있는데, 터무니없는 질과 가격에도 봉이 김선달식 장사가 가능한 것은 울며 겨자를, 아니 삐쩍 곯은 닭 요리를 먹더라도 불법으로 점거한 계곡의 명당과 비교적 편리한 주차 공간을 찾는 밀려드는 피서객들 덕분이라는 것이다. 사실 이런 식의 장사는 불법으로 자주 단속되고 영업 정지를 당해도 단기간 큰돈을 벌 수 있으니, '벌금을 내더라도 남는 장사'라던 어느 사장의 인터뷰는 다소 충격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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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 어디서 만날지 몰라, 그러니 잘해야지"


'관계'를 주제로 한다면 누구나 공감할 불멸의 조언이다. 잘한다는 전제가 '언제 어디서 만날지 모른다'라는 것인데, 그렇다면 '다신 볼 일 없을 사람'이라고 여긴다면 잘 대할 필요가 없단 의미일까? 늘 궁금했다. 유독 자신의 윗사람에게는 깍듯하고, 아랫사람 이거나 업무적으로 연관 없는 사람에겐 냉담하던 어느 동료가 있었다. 그에게 관계란, 언젠가 만날 사람 (혹은 나에게 지금 이로울 사람)과 아닌 사람의 이분법적 개념이었을까?


언젠가 회사에서 동료도 '고객처럼' 최선을 다해 돕는다던 동료는, 아마도 식당을 한다면 맛은 몰라도 마음이 편해 언제고 다시 찾고 싶어지는 그런 식당을 만들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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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의는 그렇지 않은데, 아마도 배려, 친절, 혹은 마음 씀을 겉으로 표현하는 것이 애초에 불편한 사람들이 있다. 사실 마음은 그렇지 않은데, 요구되므로 어쩔 수 없이 하는 그런 친절이 감정 노동인 사람들이 있다. 하지만 그들은 대체로 '겉은 저래도, 속은 깊은 친구야'와 같은 긍정의 평가를 듣는다. 마음은 어떤 형태로든 여기서 저기로 전해지게 마련이기 때문이다. 겉바속촉, 튀김은 이래야 하고, 내유외강, 선조들도 말씀하신 적이 있다.


본의 자체가 없는데 겉으로는 웃는 사람들이 있다. 사회생활에서는 그들의 마음 씀이 누적되는 스트레스일 것이므로, 아마도 그들에겐 철저히 '그래야 하는 사람'과 '그럴 필요 없는 사람'을 구분하는 것이 효율적인 관계법일 것이다. 감정 노동을 최소한으로 하고, 써야 할 곳에만 마음을 쓰는 것이 당연한 것이다. 전해지는 마음의 가치는 그들에게 중요한 것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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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이 정답인지는 알 수 없다. 그러 저러한 인간 군상이 모여 사회가 이루어지고 또 진화해 가니까. 그들이 틀렸다고도 할 수 없다. 하지만 회사에서, 서로를 마치 '다시 만날 일 없는 사람들'처럼 올 때 두 팔 벌려 환영하고 나갈 땐 외면하거나, 올 때 미소 짓고 나갈 때 말이 없는 관계를 경험할 때면 그저 가을 끄트머리 가지 끝 마지막 낙엽 하나 떨어지는 걸 목격한 것처럼 허전하고 감상적인 기분이 든달까? 참 쓸데없다, 고 생각하면서도. 


'돈의 심리학(The Psychology of Money)'에서 모건 하우절은, 지나온 '경험'이 주는 인식의 차이를 이야기한다. 경제적으로 성공 한다는 것은 공학도, 수학도, 경제학도 아닌 각자의 시대를 살며 경험하고 깨닫고 익숙해지게 되는 '습관'의 결과라는 것이다. 높은 성장을 경험한 세대, 급격한 경기 침체를 경험한 세대, 전쟁을 겪은 세대, 가상 화폐나 팬데믹을 겪은 세대는 각자가 당연한 것을 서로 이해하지 못한다. 처음 경제활동 나이가 되었을 때의 경험에서 생겨난 관념은, 마치 병아리가 처음 본 고양이를 엄마 닭이라고 여기게 되는 것과 같이 잊히지도, 쉽게 바뀌지도 않는다는 것이다. 공감이 됐다. 돈이든 사람이든, 결국 풍요를 만드는 것은 적당한 운과 그로 부터 갖게 되는 관념, 그리고 지속적이고 변하지 않는 행동인 '습관'으로부터 가능해진다는 것이.


그러니 사회 초년생들이 처음 만나는 사회의 모습이 지나치게 영리한 관계 투성이는 아니길 바라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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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행히도, 기억에는 흐릿해도 더 많은 순간이 따뜻했고 또 함께였음을 기억하고, 스쳐 지나도 온기 가득한 빛의 흔적을 남기는 그런 사람이 되고 싶다고 생각하게 되는 과정엔, 어쩌면 마지막 만남일지 모르는 병원의 이발사 아저씨도 있었고, 멀리 이국땅 골목의 카페 사장님도 있었고, 가깝게 지내진 않았어도 헤어질 때 서로의 무운을 빌어준 고마운 동료들이 있었다.


있다가 사라지는 복지보다, 그래도 남겨질 선한 마음의 사람들, 그들이 만드는 사회, 혹은 문화에 대한 두서없는 생각. 선심은 쓰는 것이 아니라 갖고, 키우고, 전하는 것이다.


photo by Arthur Humeau @unsplash.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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