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혹시 오늘 점심 약속 있으세요?"
어느 날, 동료 직원 한 명이 물었습니다. 하는 일도 다르고, 같이 할 일도 없으며, 나이와 키도 다른 그 동료와 나의 접점이라곤 ‘같은 회사를 다닌다’는 것 외에는 없었습니다. 생각해 보면, 그런 동료들이 많은 것 같습니다. 오가며 인사는 해도, 말을 섞을 일은 없어 며칠이 지나도록 의식적 마주침 없는 그런 사람들.
그러니 그 동료의 점심을 함께 먹자는 요청은 다소 의외였습니다. 별일 없으면 보통 팀원들과 점심을 함께 하던 나는 흔쾌히 그러자고 했습니다. 점심시간. 만나서 식당으로 이동하는 길에도, 식당에 앉아 무엇을 먹을까 메뉴를 고르는 시간에도 그저 소소한 일상의 이야기만 나누었습니다. 나이가 조금 더 많아서 그런지, 이 자리를 어색하게 만들고 싶지 않아 여러 가지 질문을 했습니다. 그러다가, 회사에 들어온 지 이제 200일이 채 안 된 동료의 요즘 생활이 궁금해졌습니다.
"요즘 회사생활은 좀 어때요?"
동료는 이 물음에는 잠시 말을 멈추었습니다. 잠시의 정적. 그 사이에, 왠지 그의 얼굴에 어두운 표정이 스치는 듯했습니다.
작은 한숨과 함께, 그가 전해온 이야기의 주제는 '리더와의 갈등'이었습니다. 입사 첫 달에는 그래도 잘 이끌어주고 자주 칭찬도 해주던 리더가 두 달째에 들어서면서 변했다고 했습니다. 업무 지시를 받고 잘 이해가 안 돼 되물으면 설명을 해주기보다는 '이제 알 때도 되지 않았냐'며 질책을 하고, 회의 시간에는 동료들이 보는 앞에서 공개적으로 비판을 해 면이 서지 않는다고 했습니다. 그러다 보니 자신감도 없어지고, 팀에서도 고립되는 듯 느낀다고 했습니다. 결국 다른 동료들과 자연스레 단절이 된다고 한숨을 쉬며 말했습니다.
이야기를 들으며 이 동료의 평소 이미지가 떠올랐습니다. 늘 말수가 적고 점심도 혼자 먹는 일이 많아 보였습니다. 자리에 앉아 있는 시간이 많아 오가며 마주칠 일도 거의 없었습니다. 원래는 스스로가 밝고 대인 관계에 적극적인 성격이라는 이 동료는, 부푼 희망을 품고 온 회사에서 자신의 리더로 인해 풀이 죽은 모습이 된 듯했습니다. 최근에는 대인 기피와 우울증도 생겼다고 했습니다. 그의 자초지종을 들으며, 참 안타까운 마음이 커졌습니다. 하지만 제가 해줄 수 있는 일이 경청하고, 상투적인 위로와 일반적인 조언을 건네는 것 외에는 없다는 한계는 인정할 수밖에 었었습니다. 저는 그의 리더도, 어떤 조치를 취해줄 직무나 직급도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오래전 내가 겪었던 팀장과의 불화가 떠올랐습니다.
한 회사에 초기 경력사원으로 입사해 한창 밝은 얼굴로 인사를 하고 다니던 새내기 시절이었습니다. 당시 팀원은 팀장님을 포함해 총 4명이었는데, 호랑이 같은 팀장님은 가장 나중에 합류한 저를 자주 혼내곤 했습니다. 당시에는 종이로 인쇄해 수기 결재를 받아야 해서 보고서를 가지고 팀장님 자리에 가 검사를 받는 일도 있었는데, 그렇게 마주하는 것을 적극적으로 회피하고 싶을 정도로 두려운 일이었던 기억입니다. 회의 시간도 너무 싫었습니다. 보고 회의에서는 어김없이 질책이 이어졌고, 때때로 본인이 알려주기보다는 옳은 답을 찾을 때까지 침묵하며 기다리는 힘든 시간도 간간히 있었습니다. 분명 해결이 필요해 보였지만, 직접적인 대화 자체가 불가능하다고 여겨져 다른 방법을 강구해야 했습니다. 그래서 인사 팀장님께 SOS를 요청했습니다. 초년차 직장인으로서는 그마저도 쉽지 않았지만, 부서 지휘 보고체계에서의 해결 시도는 직접적인 불이익이 있을 수 있다는 부담감 때문에 '익명'을 부탁하며 인사팀장님을 찾아가 고민을 털어놓기로 한 것입니다.
당시 회사에는 대여섯 명의 인사팀원이 있었고, 그중 인사 팀장님은 구성원과 면담을 하곤 했습니다. 경력의 많고 적음에 관계없이, 관계나 업무, 조직 상의 불이익이나 그로 인한 불편함을 겪는 이들은 그 고민을 인사팀장에게 털어놓는 게 크게 불편하지 않은 문화였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결과적으로, 인사팀장님께 들은 조언은 꽤 도움이 됐습니다. 위로를 받았고, 통찰을 얻었으며, 노력해도 해결되지 않으면 개선을 위한 여러 방법들이 있으니 걱정하지 말라는 든든한 지지 또한 받았습니다.
이번 고충을 겪는 동료와의 대화는 사실 그때 제가 인사팀장님과 시도했던 면담과는 목표 지향의 질에 차이가 있습니다. 이번에 그 동료에게 했던 조언 중 ‘시스템’에 해당하는 것들은 별로 없었습니다. 해줄 수 있는 일이 없으니, 건넬 수 있는 말들은 동료가 스스로 할 수 있는 것들 뿐이었습니다. 그럼에도 그는 연신 고개를 숙이며 무척 고맙다고 이야기했습니다. 그는 업무상 연관도 없고 직무상 권한도 없는 나를 찾은 이유가 “편하게 이야기를 털어놓을 수 있는 리더라는 생각이 들어서”라고 했습니다. 감사한 일이었지만, 다른 특별한 대안을 마련해 줄 수 없음이 미안하기도 했습니다.
여러 회사를 겪으며 많은 인사팀을 경험했습니다. 그중 한 곳에서는 인사팀에 속해 일을 해본 적도 있습니다. 그러면서, 구성원이 팀에도, 부서에도, 동료에게도 말 못 할 고충을 편하게 이야기할 수 있는 인사팀이 있는 회사는 많지 않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래서인지, 요즘 소통의 대세는 '허심탄회' 보단 '눈치껏 적당히', '어프로치'보단 '적당한 거리'를 추구하는 것이 아닐까요? 새삼 사람에 관한 일(人事)이라고 우리 식으로 해석한 HR의 시스템적 책무와 관념적 역할이 어떻게 균형을 이뤄야 가장 인상적인 모습일까 생각하게 됩니다. 그러한 적절한 균형은, 채용, 복지, 급여, 문화 등 점차 세분화되고 전문적이 되어가는 인사 시스템에서는 한계가 있을지 모릅니다. 마치 상담원과의 대화가 아닌, 숫자나 키워드로 구분된 ARS 혹은 챗봇의 문의 유형 선택과 같은 것 아닐까요? 모호한 고민에 명확한 시스템은 때때로 어색한 조화처럼 느껴집니다.
현재 근무하는 회사는 규모가 작아 인사팀이 별도로 없고, 채용은 경영진 승인 하에 각 팀 리더가 진행하며 여러 제반 업무는 총무부에서 하고 있습니다. 부대표님이 운영 겸 인사 리더 역할도 해서 직원들이 종종 어려움을 상담하려 면담을 신청하곤 합니다. 하지만 ‘면담’이라는 형식과 상대의 직급 때문에 부담을 느끼는 직원도 분명히 있습니다. 너무 답답한 나머지, 평소 교류 없던 타 부서 리더인 저한테 점심 대화를 요청한 동료 직원처럼 말입니다.
이번 일을 계기로 회사에 하나의 ‘소통 창구’가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과거 경험을 바탕으로 ‘컬처 앰버서더’라는 일종의 구성원 참여형 문화 제도를 제안했고, 지원자를 받아 현재 1기가 운영 중입니다. 컬처 앰버서더의 역할은 전사 이벤트를 기획 운영하고, 환경 개선 등에 참여하며 직원들의 고충을 듣고, 필요시 적절한 조치가 있을 수 있도록 건의하는 일 등입니다. 완전하진 않아도, 매번 시행착오를 통해 발전하고 그 자체가 원활히 소통되도록 기수를 정해 운영하고 있습니다.
얼마 전 해당 직원이 타 부서원과 점심식사를 함께 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제가 했던 조언 중 '직원들에게 먼저 마음을 열기'를 하고 있는 듯 보였습니다. 최근에는 본인의 어려움을 적극적으로 알려 타 부서로 배치가 되는 조치가 있기도 했습니다. 그게 가장 좋은 결과는 아닐지 몰라도, 일단 회사를 다니는 동안 더는 같은 문제로 과도하게 스트레스를 받는 일은 없기를 바라봅니다.
이 글은 HR 플랫폼 원티드 웹진 인살롱에 기고되었습니다.
(사진: Unsplash의 Igor Omilaev)