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른 아침 운전 중 벌어진 일이었습니다. 대로변에 잠시 차를 세웠다가 다시 출발하기 위해 점멸등을 켜고 미러를 확인한 후 좌측으로 조심스레 핸들을 돌리며 차를 모는데, 둔탁하게 무언가 부딪히는 소리가 들렸습니다. '사고인가?' 잠시 멍한 기분이 들었지만 제 차 앞에 다른 차 한 대가 멈춰 선 것을 보고는 이내 접촉사고가 있었음을 깨달았습니다. 좌측 후사경이 꺾여 반대방향으로 접혀있는 것으로 보아, 후사경간 충돌이 있었던 것으로 보였습니다. 아마도 우회전을 하려고 빠르게 차선을 변경하던 차와, 사각지대로 인해 미처 보지 못하고 출발하려던 제 차가 아주 찰나의 교차점에서 만난 것이 사건의 요지겠지요. 먼저 비상등을 켜고, 차에서 내렸습니다. 사이드미러를 잡고 조금 힘을 줘 보니 원래대로 돌아갔습니다. 아마 완충장치에 의해 파손에 이르지는 않은 듯 보였습니다. 앞선 차량은 비상등을 켠 채로 서 있었습니다. 그 차에 다가가서, 아직 열리지 않은 차 문을 조심히 두드렸습니다. 운전자가 내렸습니다. 중년의, 말끔히 정장을 차려입은 남성 분이었습니다.
“제 차는 괜찮은 것 같아요 그냥 가셔도 됩니다”
우선 급한 출근길에 소모적인 언쟁으로 지체할 필요가 있겠나 싶어 나름 배려한다고 한 이야기였습니다. 두 차 모두 별로 다친 곳도 없어 보이기도 했고요. 상대 차 운전자는 내 차를 한 번, 본인 차의 오른쪽으로 가서 한 번 살펴보더니, "제 차도 괜찮은 것 같다"라고 말했습니다. 그리고는,
“그런데 우리 둘 다 많이 놀랐죠? 앞으로는 서로 더 조심하면 좋겠어요”
살짝 웃으며 하는 운전자의 저 말을 들으면서 나도 모르게 고개가 숙여졌습니다. 서로 ‘조심히 가시라’며 살짝 지은 미소와 함께 인사하고 차에 올랐습니다. 두 차가 교차로에서 한 차는 직진, 다른 한 차는 우회전으로 서로 멀어지는 순간까지 마치 '작별 인사'하듯 비상 점멸등을 켜고 있었습니다. 그렇게 사건의 장소로부터 빠르게 멀어지고 있었지만, 그 길 내내 생각의 여운은 길게 이어졌습니다. 바로, 한 사람이 보여준 '신사적 대처' 때문이었습니다.
여러 대인과의 사건에서 우리는 대체로 ‘나는 잘못이 없다’는 걸 전제하고 반응하는 것이 보통입니다. 때로는 나의 잘못이 없지 않아도, 다짜고짜 상대의 사과를 요구하며 '논쟁의 우위'에 서려고 합니다. 이는 하루이틀 일은 아닙니다. '목소리 큰사람이 이긴다'는 말로부터도 알 수 있습니다. 그렇게 나에게는 조금의 피해도 없게 하는 것이 지혜롭다고 여기기도 합니다. 이러한 현상은 과도하게 나의 피해에 집착할 때 발생하는 듯합니다. 회사에서도 동료가 나를 철저히 분리 보호를 하는데 집착한 나머지 경계에 있는 업무로부터 지나치게 방어적 태도를 보이거나, 사실 모두가 동일한 어려움을 겪는 상황인데도 '나만 피해를 보고 있어'라고 느끼며 동료나 조직에 적개심을 드러내는 것도 맥락이 비슷한 경우입니다.
첫 회사에서 사규집에 있던, 오랜 도덕교과서에나 나올만한 그림을 곁들인 행동 가이드가 생각납니다. 인사 잘하기, 업무 요청 시 예의, 거절이나 사과의 방법 등이 정성스레 정리되어 있었습니다. '뭘 이런 것까지 가이드를 하나'하면서 다소 실소를 머금고 봤던 옛 방식의 문화 가이드. 어쩌면, 우리가 '소셜'이란 단어가 익숙한 시대에 살면서 같은 말인 '사회'의 본질은 망각했던 것은 아닐까요. 위키에서 말하는 사회(社會)란, 공통의 관심과 신념, 이해에 기반한 다인(多人)의 집단이라고 합니다.
이번의 경우에도, 제 나름대로는 상대를 배려한다며 한 첫마디가 ‘제 차는 괜찮아요 (그러니 염려하지 마시고 가셔도 됩니다)’와 같은 말이었습니다. 사고가 벌어진 뒤 차에서 내린 다음에는 우선 안부를 묻고, 잘잘못은 다음에 따져도 될 일이었는데 말입니다. 아마도 잠재의식 속에, 사과를 하거나 상대의 안부를 묻게 되면 나의 잘못을 인정하는 꼴이 될 테니 가장 배려처럼 보이면서도 잘잘못에서 우위를 보이는 방법을 생각했던 것일까요?
어쨌든, 불쾌할 수 있는 월요일 아침 이벤트가 훈훈히 마무리하며 또 하나의 영감이 된 것은 그 신사분의 '헤아림'과 '배려'로부터였습니다. 그러니 신사가 될 행운을 갖자면 제가 했어야 할 첫마디는,
“괜찮으세요? 많이 놀라셨죠"
가 더 좋지 않았을까요?
이 글은 HR 플랫폼 원티드 웹진 인살롱에 기고되었습니다.
(사진: Unsplash의Edi Libedinsky)